병원 찾아 왕복 백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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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찾아 왕복 백리길
  • 최동철
  • 승인 2020.08.2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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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이었던 지난 14일 아침, 동네 할머니 둘이 대문 밖에서 서성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 “차 좀 태워 달라”한다. 계속 이어 졌던 장맛비 탓에 “혈압 약 떨어진 줄도 몰랐다”며 병원 앞까지 승차 부탁을 했다.

 노인들이 늘 그러하듯 줄곧 먹던 약을 한번이라도 못 먹게 되면 큰일 날새라 생각하는 것은 어쩜 당연지사일 것이다. 보은군 내에는 치과와 요양병원을 제외한 17개 병의원이 있다. 이 중 삼청(삼승면)과 현대(마로면)만이 면단위에서 의술을 펼치는 의원이다.

 현대의원 앞에 도착했다. 헌데 입구 앞에 평상복 차림의 의원관계자가 마중 나와 있다. 그리고는 “오늘은 휴진이고 토요일은 광복절에 대체공휴일까지 겹쳐 오는 18일, 화요일에나 진료가 시작 된다”며 “급한 환자는 보은읍 한양병원으로 가라”고 통보했다.

 두 할머니를 난감하게 했던 평일 급작스런 휴진은 대한의사협회가 주도한 총파업 때문이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을 확대해 의사수를 증원하겠다는 정책을 내자 이를 철회하라는 의사들의 실력행사인 셈이다.

 정부는 농촌지역의 의료인력 부족 등 미래의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해선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을 통해 의사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 농촌지역인 보은군도 의료취약지이다.

 보건소, 지소, 진료소 등 21개소가 운영되지만 빈약한 인력에 기본적 진단 등 예방차원의 역할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안과, 외과, 통증의학과 등을 제외한 내과 등 가정의학과 의원이 10개소 있지만 응급의료시설과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는 당직 의료기관은 한양병원 뿐이다.

 그나마 응급 의료 인력의 태부족으로 응급환자 발생 땐 그야말로 위태위태하다. 거개가 구급차를 타고 청주나 대전 등으로 사이렌을 울리며 이송된다. 자료에 따르면 농촌 지역 의료기관은 도시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의사수도 인구 1000명당 1.6명이다.

 농촌지역 근무를 희망하는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 인력은 극히 소수다. 결국 농촌 주민은 아파도 제대로 치료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번 정부안대로 지역의사 선발과 10년간 의무 복무규정 등이 전제된 의대 증원 정책은 옳은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의사협회도 심각한 농촌의료현실을 자각하고 대승적 차원에서 정부와 협력해 나가야 한다. 자칫 추잡한 ‘밥그릇 지키기’로 비화된다면 코로나19의 헌신적 의료행위로 존경받는 의사상에 흠집이 날까 우려된다.

 그날 두 할머니는 왕복 백리길 한양병원에서 어렵사리 약을 처방받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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