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는 산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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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는 산수리
  • 양승윤 (회남면 산수리 거주/한국외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7.3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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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에 페트로나스라는 국영석유회사 쌍둥이 빌딩이 있다.
이 건물은 1998년부터 2004년까지 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1997년 7월 태국에서 터져나온 아시아 외환위기는 삽시간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덮쳤고 그 해일은  곧바로 우리나라에까지 몰려왔다.
 말레이시아는 1998년 9월 전 세계 69개국이 참가하는 영연방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비영어권 국가에서 열리는 최초의 영연방 체육대회였다. 페트로나스 빌딩도 이 때 건설되었다.
말레이시아는 IMF에 손을 벌이지 않았다. 정부가 앞장서서 온 국민을 독려하여 허리띠를 졸라매고 외환한파를 견뎌내었다.
 말레이시아발 금 모으기 운동의 성공이었다.
서방기자가 외환위기 속에서 쌍둥이 빌딩 건설을 강행하는 이유를 물었다. 마하티르 총리의 답변은 간결했다. "국가위기에는 모든 국민이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 국부 수카르노는 독립 후 국민들의 자긍심과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전통기법으로 만든 바틱(batik)제조업을 적극 육성했다.
 수카르노를 권좌에서 몰아내고 집권한 수하르토도 300여 종족이 600여개지역 언어를 상용하는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 인도네시아를 한데 묶는 방법으로 바틱을 채택하고, 국가 행사 때 마다 서양식 정장 대신 바틱셔츠를 착용했다.
 1971년에는 바틱을 공무원 복장으로 규정하여 국민들의 일체감을 고취시켰다. 이로써 바틱산업은 전성기를 맞게 되었고, 2009년 세계문화유등재로 이어졌다.
인도네시아최초의 국민직선 대통령으로 선출된 유도요노는 2010년 10월 2일을 ‘바틱의 날’로 제정하면서 주 1회 이상 바틱을 착용하자고 제안하였다. 유도요노의 후임 조코위 현 대통령은 2016년 한 걸음 더 나가서 매 주 금요일을 전 국민 바틱을 착용하는 날로 선포했다.
 바틱셔츠는 전통으로부터 모든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국가사랑'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에 거주하는 선배 한 분이 메일을 보내왔다. “후배님, 시골에 사시면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계시다고요?”라고 물었다.
 그는 “나이 오십이 넘은 아들 녀석이 인도네시아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책상머리에 늘 태극기를 걸어놓는 것을 보고 뿌리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다”면서 “아들은 인도네시아에 8년 반을 살면서 우리나라 국경일에는 꼭 태극기를 내걸어 한쪽에는 태극기 다른 한쪽에는 인도네시아 국기를 나란히 게양하면서 애국심의 발로인양 의기양양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그 태극기를 미국에서는 선뜻 내걸기가 힘들다”면서 “집집마다 깨끗한 성조기를 일 년 열두 달 내내 게양하는 기세에 눌려 기가 꺾인 게 아닌가 싶다”며 자신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지난 주, 우리나라 5대 국경일의 하나인 제헌절이 지나갔다.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던 차에 이장님이 전화를 걸어 오셨다.
 회남면사무소에서 우리 마을에 여전히 태극기가 많이 게양되었는지, 게양되어 있으면 사진 몇 장 찍어 보내달라는 주문이 있다고 했다. 집집 마다 태극기를 내건 마을, 아름다운 꽃으로 뒤덮힌 마을, 그것이 우리 마을 산수리였다.
언제나 힘차게 펄럭이는 산수리의 태국기와 아름다운 꽃길을 보면서 국기를 걸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선배님을 생각하며, 산수리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이루고자 하는 마을 공동사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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