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날’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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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날’에 부쳐
  • 최동철
  • 승인 2020.03.1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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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은 인류와 농업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모든 세상 만물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흙을 빚어 그릇과 집을 짓고, 씨앗을 뿌리고 가꿔 먹을거리를 얻었다. 흙 때문에 전쟁을 했고 흙을 지키고자 목숨을 걸기도 했다. 그것은 예나 이제나 변한 게 없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 4월 ‘인문평론(人文評論)’에 발표된 이무영의 농촌 단편소설 ‘흙의 노예’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이무영은 필명으로 이용구, 이갑룡이 본명이다. 어려운 농촌현실을 주제로 한 소설을 주로 썼는데 애석하게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됐다. 줄거리를 보자.

 -귀촌한 수택은 자신의 귀농설계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로맨틱한 망상이었는지 곧 깨닫게 된다. 처음 몇 달간은 하늘과 땅이 맞닿은 푸르른 자연 속에서 농사도 짓고, 소설도 쓴다는 일종의 부르주아적 자만심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였다.

 허나 피땀 흘려가며 농사를 짓고 나서 추수를 해보니 정작 자기 몫으로 남는 것은 벼 넉 섬 뿐이었다. 이것으로 다섯 식구가 반년을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 앞에 그만 낙담하고 만다. 아버지 김 영감은 십 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만석꾼이었다.

 고아출신으로 자수성가한 김 영감은 그야말로 근검절약, 구두쇠의 화신이었다. 그런 그가 30여마지기의 논밭을 10년 사이에 다 날려버리고 소작농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김 영감은 그 까닭이 신문명의 유입(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의한 농촌착취) 때문이라며 억울해 한다.

 김 영감의 땅에 대한 집착은 광적이다. 남의 땅이 된 지난날의 자기 땅을 찾아가 하염없이 바라보는가 하면, 종이쪼가리가 되어버린 땅문서를 뒤적이기도 한다. 마지못한 수택이 자신의 원고료와 퇴직금, 세간 등을 팔아 그 땅을 도로 사겠다고 하니 김 영감은 뛸 듯이 기뻐한다.

 하지만 이미 늙고 병든 몸이다. 자신의 약값 때문에 땅값이 축날 것을 염려한 김 영감은 결국 양잿물을 마시고 만다. 그리고 “찾어-땅-.” 한마디를 남기고 죽는다. 김 영감에게 있어서 땅은 그의 전부였고, 그는 철저한 흙의 노예였다.-

 어제 ‘3월11일’은 다섯 번째 맞는 법정기념일인 ‘흙의 날’이었다. 지각을 구성하고 있는 단단한 물질인 암석이 공기나 물, 바람이나 열 등 풍화작용에 의해 잘게 부서져 자갈과 모래가 되고 부드러운 흙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200여년이라고 한다.

 헌데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자료에 따르면 세계 흙의 25%는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며 현재도 계속 훼손되고 있다. 토양은 한 번 훼손되면 재생되기 매우 어려운 한정된 자원과 다름없다.
 지금과 같은 훼손속도라면 2050년에는 전 세계 1인당 경작 가능지가 1960년 대비 4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단다. 흙의 소중함과 보전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골똘히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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