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는 국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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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는 국보가 없다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0.03.0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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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와 보물중 격이 높은 것으로 치면 물론 국보가 먼저다. 국보는 보물 중에서 특히 그 유례가 드문 것을 국보로 지정하는데 곧 나라(國)의 보물인 것이다. 이전에는 문화재 개념도 없던 우리에게 문화재의 중요성을 알려준 것은 먼저 개화된 일본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8월 9일, 조선총독부는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총독부제령 제6호로 제정하고 그에 따라 지정된 것이 서울남대문(숭례문, 보물1호)과 서울동대문(보물2호)였다. 법령 명칭에서도 국보는 없다. 조선에는 국보가 없다는 것이다. 나라가 없기 때문에 문화재에도 나라국(國)자를 붙일 수 없었다. 해방후 1962년에 제정된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서울남대문(숭례문)은 국보1호, 서울동대문(흥인지문)은 보물1호로 가각 재지정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국보1호인 숭례문은 2008년에 무지한 시민의 방화로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복원시 옛 목부제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신축건물이다. 목조가 소실된 목조건물은 국보는 커녕 일반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없다. 타지 않는 석축은 남아있지만 그것은 숭례문이 아니다. 그런데 문화재위원회는 국보1호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공청회니 뭐니 하면서 형식은 갖추었지만 그대로 강행되었다. 그 이유는 파손된 현판과 아래층이 조금 남아있다는 것이고 실측도면에 의해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복원한 건물은 외형만 비슷할 뿐 역사성과 문화재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국보인 고려청자를 재현하여 구워낸 상감청자운학문매병이 문화재가 아닌 것과 같다.
그런데 왜? 신축 숭례문은 아직도 국보1호일까? “흥인지문”도 숭례문과 동시대에 지어진 것이나 이후 여러번 보수를 했기 때문에 보물1호로 지정되었던 것. 그러면 현재는 어떤가? 보물1호인 흥인지문과 새로 지은 숭례문과 비교가 될 수 있을까? 일본이 서울남대문(숭례문)을 조선보물 1호로 지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유지하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라면 국보1호의 지위를 노치지 않으려는 어떤 세력과의 파워게임일까? 과연 누구일까? ‘명분은 만들면 된다.’는 정치논리가 문화재분야에도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인가?
문화재 이야기를 하면서 나라의 소중함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나라의 흥망과 관련한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수많은 고통을 받아왔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의 조선 통치방법은 달랐다. 역대 중국은 조선을 속국으로만 삼고 자치권은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일본의 통치방식은 달랐다. 그들은 아예 조선을 없애버리고 일본영토화 시켰다. 섬나라인 자기들은 내지(內地)라 하고 조선은 반도(半島)라 함으로써 주객이 전도되었다. 또 조선인들에 대해서는 창씨개명 까지 강요하여 일본신민화 시키려 했다. 악랄한 일본의 식민지정책이었다. 조선과 사신을 교환해왔던 유구국(오끼나와)이 일본에 아예 병합되어 없어져 버린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이제 4.15총선이 눈앞에 다가왔다. 아직도 우리는 섬기는 문제에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두고 다투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버리고 중국을 택하는 데는 우리가 엄청난 시련을 겪을 수가 있다. 미국은 금세기 경제와 군사 공히 세계 최강국이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자유와 민주주의의 고귀함을 가르쳐준 나라다. 그러나 중국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독재국가이다. 현 집권당은 총선이 끝난 후 바로 사회주의체제로 직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적 자유주의 체재를 존속하느냐, 아니면 배급제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느냐 하는 중대한 선택이 4.15총선의 결과에 달려있다. 극일은 필요하지만 특별한 정치적 목적을 위한 중국사대주의로 회귀하려는 망상은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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