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닭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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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닭의 지혜
  • 최동철
  • 승인 2020.02.1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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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날 이른바 ‘3김 정치인’중 한 분이었던 김종필씨가 즐겨 쓰던 휘호 중에 ‘줄탁동기’가 있다. 줄탁동시라고도 하는데 ‘줄’은 부른다는 의미고 ‘탁’은 쫀다는 의미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가 때에 맞춰 알을 안팎에서 동시에 쪼아야 한다는 사자성어다.

 그래서인지 김씨는 늘 때를 기다렸다.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정치적 기회가 확연할 때만 결단을 내리곤 했다. 그 까닭인지 그는 박정희 부터 김대중 정권 때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충청도의 장수 정치인이 됐다. 다만 그로서의 아쉬움은 늘 2인자에 그쳤다는 것 일게다.

 줄탁동기의 출처는 불가 선종의 공안(선문답)이 실려 있는 ‘벽암록’이다. 공안은 화두라고도 하는데, 승려의 깨우침을 위한 물음의 요체이자 일종의 수수께끼라 할 수 있다. 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승려들은 하나의 공안만 가지고도 평생을 참구하기도 한다.

 벽암록 16칙 ‘경청줄탁동기’의 내용도 제자를 깨우치려는 공안중 하나다. 한 승려가 경청스님에게 “제가 안에서 쪼아댈 터이니 스님은 밖에서 쪼아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조른다. 스님은 대뜸 “살아날 수 있겠는가?”고 묻는다. 승려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스님이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고 답하자, “형편없는 놈이로군.”이라며 스님은 큰소리로 호통 친다.

 화두가 무르익지도 않은 승려가 경청스님에게 도와달라고 요청만 한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을 알려줬는데도 알아듣지 못하자 스님이 승려를 나무랐다는 의미다. 즉, 병아리가 나올 준비가 돼있지 않은데 덜떨어진 어미닭이 알을 미리 쪼아 깨버리면 새끼는 죽고 만다.

 줄탁동기가 성공하여 병아리가 알에서 나와 어미 날개품속에 파고들기 위해서는 병아리나 제자보다 어미닭과 스승의 지혜가 더욱 요구된다. 어미는 때가 되어 안에서 알을 쪼는지 제대로 살펴야하고, 스승은 제자의 화두가 무르익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내일 14일이면 ‘보은군수 퇴진운동본부’가 지난해 12월16일부터 60일간 추진한 정상혁 보은군수에 대한 주민소환 서명운동을 마감하는 날이다. 그동안 군내는 찬반논란이 벌어져 비록 주먹다짐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의견이 다른 군민 간에 불협화음도 많았다.

 한 편에선 ‘친일망언’하고 군정도 엉망으로 이끄는 형편없는 군수라고 쓴소리를 내뱉으며 서명동참을 호소했다. 또 한 편에선 군민 간 분란을 조장한다며 항의성 삭발을 하는 등 결기를 과시하기도 했다. 어느 편이 때를 읽지 못한 덜떨어진 어미닭인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양쪽 다 알을 깨보려는 어미닭의 모습이었다. 

 어쨌든 서명 작업은 내일 자로 마감된다. 이제 초미의 관심사는 ‘군수 퇴출’을 판가름하는 주민소환투표가 과연 실시될 것인가의 여부다. 늘 그렇듯 암묵적인 대다수 군민들은 줄탁동기의 때를 읽고 현명하게 화답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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