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와 악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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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와 악취
  • 주현주 기자
  • 승인 2019.12.05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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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 해도 이제 달력 한 장 남았다.
중학교 동창모임이 있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학창시절을 돌아보며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갔다.

검은 머리였던 친구들도 이제는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고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보은읍에 사는 한 친구가 악취 때문에 고역이라는 말을 꺼냈다.
이 친구는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봄을 만끽하기도 전에 돈사에서 발생하는 악취가 이평아파트 단지까지 날아오고 습도가 낮거나 한 날은 문을 열어 놓으면 옷에도 냄새가 배는 등 대책이 없다”고 했다.
“항의를 하면 반짝이고 남편과 노을진 보청천을 배경삼아 느긋하게 산책을 하다가도 돼지분뇨 냄새로 기분을 망쳐 얼른 집에 들어와 냄새가 옷이나 이불에 밸까 문부터 닫는다”며 “어떻게 대책 좀 마련해 보라”는 이야기를 하자 다른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쳤다.

다른 친구는 “옛날 학교만 갔다 오면 부모님 성화에 소 끌고 들판으로 나가 꼴을 먹이고 집에 오면 양철로 된 물지개를 지고 동내를 돌며 구정물을 걷어와 소죽 쑤고 외양간 치우기를 도맡아 해 축분 냄새에는 이골이 났지만 요즘 돼지분뇨는 도저히 참기가 힘들다”고 하소연 했다.

그러면서 “옛날 시골에서는 가축 한 두 마리 기르지 않은 집이 없었고 소는 논,밭 갈고 추수 때 수레를 끌어 운송수단으로 요긴하기 사용해 소가 힘들고 피곤해 보이면 사삼이며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 콩죽까지 쑤어 먹이는 등 나보다 더 생각해 섭섭했던 때가 있었다”고 추억을 이야기해 좌중을 파안대소하게 만들었다.

이 친구는 “여름이면 외양간에 메둔 소가 되새김질하는 소리며 가끔 크게 숨을 내뱉는 소리, 파리모기를 쫓느라 꼬리와 머리를 이리저리 휘두를 때 마다 나는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 하고  왕방울 만한 소의 꿈벅 꿈벅하는 눈을 보면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든다”고 말했다.

또 “학교 공납금 고지서를 부모님께 드릴 때마다 전대를 앞으로 차고 보은소시장으로 송아지 팔러 가시고 새끼를 잃은 어미 소가 하루 종일 움매 움매 우는 소리에 가슴 아팠던 추억”을 꺼내 놓았다.

동창들은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기업화돼 사료를 먹고 자란 가축의 분뇨는 옛날 풀과 여물을 먹여 키우던 그 시절 소,돼지가 아니”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야기가 오가던 중 한 친구가 “이제 달력 한 장 남았으니 양돈협회 등에서 군에 고기를 기탁할 시점”이라는 점괘를 내놨고 동창들은 “그럴까”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과거 추석이나 설, 결혼과 사람이 죽으면 손님대접을 위해 돼지를 잡고 고기 한 점 더 얻어 먹겠다고 고개를 쭉 빼고 구경 하던 시절은 지나갔고 지금은 오히려 고기가 넘쳐 나고 너무 많이 먹어 비만과 다른 질병이 발생되고 있는 시대”라며 “고기 기부로 생색 내려하지 말고 축사현대화나 축분냄새가 안나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고 일동은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기부는 당연 환영받고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가진 사람들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마음과 정성을 나누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야 말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함께 사는 지역을 만드는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기부를 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본질을 숨기기 위해 또는 목적을 밑바닥에 깔고 하는 기부는 밑천이 금방 들어나게 마련이다.

친구가 내놓은 예상대로 최근 대한한돈협회 보은군지부가 돼지고기를 보은군에 기탁했다.
매년 하는 기부지만 썩 달갑지만은 않다. 내년 봄이면 공짜 돼지고기 먹은 값으로 집안의 창문을 꼭꼭 닫고 코를 쥐어 막으며 생활해야 하는 댓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기부 대신 차라리 “ 그 동안 축분 냄새로 고통을 당하신 군민 여러분께 맑은 공기를 돌려 드리겠습니다”고 하고 냄새 저감시설 개선에 나서는 것이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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