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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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
  • 최동철
  • 승인 2019.10.3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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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황금물결이 며칠사이 허허벌판이 됐다. 곳곳에선 콤바인이 윙윙거리며 수확이 한창이다. 한 여름 뙤약볕아래 땀 흘리며 허리 굽혀 일했던 농부의 까무잡잡한 얼굴엔 하얀 미소가 그득하다. 몇 차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다행히 보은지역만큼은 큰 피해가 없었다.

 추수라고도 하는 가을걷이는 벼, 콩, 기장, 수수, 메밀과 같이 가을에 여무는 곡식의 알곡을 터는 타작까지 과정을 통칭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추분부터 시작해 추위가 닥치기 전에 갈무리를 해둬야 함으로 이웃과 품앗이로 서로 도왔다.

 어림잡아 1980년대 전반까지 만해도 사람마다 한 손에 낫을 들고 벼 베기를 했다. 군인들이나, 공무원들도 동원(?)되다시피 농촌의 일손을 도왔다. 낫으로 벼를 벨 때는 보통 네 줌을 한 단으로 묶었는데, 한 단은 쌀이 한 되 가량 나오는 분량이다.

 그 때는 대부분 서리가 내린 다음 벼 베기를 시작했다. 나락이 제대로 여물고 볏짚도 잘 말라있기 때문에 낫질도 힘이 덜 들었다. 낫으로 벼를 벤 후에는 논바닥에 볏단을 세워 더 말렸다. ‘20단’을 ‘한 가리’ 또는 ‘한 광’이라고 하는데, 이를 타작하면 쌀 한 섬이 된다.

 초등학생 시절의 교과서에 ‘우애 깊은 농부형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쌀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형제가 서로 생각한다. 한 밤중 몰래 쌀 한 두가리를 더 옮겨주다가 중간지점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고마움을 느낀 형제는 부둥켜안았다는 얘기다.

추수 때가 되면 한 마을에 정이 흘러넘쳤다. 곳간마다 가득 차는 낟가리로 이웃 간의 인정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이웃 간의 정이 그리 많지 않다는 느낌이다.  
 
 타작은 마당질이라고도 했다. 원래는 일일이 손작업으로 진행됐다. 탯돌, 절구통으로도 했고, 볏단을 감아 어깨 뒤로 돌려 내려치는 개상도 사용했다. 그러다가 발로 밟아 돌리는 족답탈곡기, 모터로 돌리는 동력탈곡기, 경운기가 돌리는 자동탈곡기로 해냈다.

 이제 이러한 가을걷이 모습은 옛 이야기일 뿐이다. 기계화에 따라 모내기도 앞당겨졌고, 이삭이 패고 45일이 지나 나락이 90퍼센트 정도 여물었을 때 소출이 많고 품질도 좋다. 그래서 요즘의 가을걷이는 시기도 빨라졌고 모든 걸 콤바인이 알아서 척척 자동으로 해버린다.

 다만 콩, 팥, 깨 등의 가을걷이는 아직 완전한 기계화가 되지 않았다. 주로 손과 낫, 호미로 콩대를 꺾어 수확한다. 반 아름 크기의 단으로 묶어 세워 말린다. 타작은 마당에 말린 콩, 팥 대를 펴 널고 도리깨로 두드리거나 콩 탈곡기를 사용한다.

 어쨌든 보은지역은 태풍도 비껴갔으니 만큼 가을걷이가 다소 미흡해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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