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서정은 여전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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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서정은 여전한데 ~~
  • 김종례 (시인,수필가)
  • 승인 2019.10.31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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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왔는가 싶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나뭇잎이 곱게 물들어 가는 요즘이다. 이미 정원의 꽃나무들은 한 줌의 검불때기로 주저앉으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우주섭리를 가르치는 요즘이다. 내 어릴 적 기억속의 시월의 풍경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하였던가! 어디를 가도 들판에는 가을햇살에 윤기 흐르는 오곡백과가 마냥 풍요로웠고, 에메랄드빛 하늘아래 코스모스는 풀이슬처럼 흔들렸으며, 붉은 사루비아의 찬란함이 그리움의 화신처럼 각인되었었다. 올해도 시월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나뭇잎은 여전히 곱게 물들어 가건만, 우리네 가슴마다 풍요로운 만선의 배가 다다르지 않음은 어쩐 일일까? 시월이 슬프기만 하였다. 거친 파동으로 소용돌이치던 구월로부터 묻어 온 시월도 슬프긴 마찬가지였다.
 여름부터 자연재해와 인재의 참혹한 상황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가을을 기다렸다. 국민들을 불안과 갈등으로 몰아가던 그 첫 번째 요인은 각종 범죄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땅에 떨어진 도덕관으로 연륜과 경륜이 무시되고, 나날이 가치관의 혼란이 가중되어 가는 현실이다. 치유되지 않는 분노의 화 더미에 자신과 가족과 주변까지 사르는 행위가 수위를 더해가고 있다. 또한 한사람의 위력을 천하에 과시하였던 조국열병은 표리부동(表裏不同), 양두구육(羊頭狗肉)식 해법으로 국민을 갈등과 대립의 도가니로 몰고 가더니, 끝내 우소지사(牛笑之事)할 일로 끝을 맺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국민 불안지수 상위를 차지하며 국토 분단의 슬픔을 재연하고 있는 북한 미사일발사. 연다라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확산으로 농축산의 실정도 안타깝기 그지없었고, 막심한 후유증을 몰고 온 가을 태풍의 상흔도 아프고도 비참하였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 피날레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수십년간 전국 여성들의 공포 대상이었던 화성연쇄살인 피의자의 자백은 다시 온 국민을 경악의 도가니로 빠지게 하였다. 시대의 돌부리에 걸린 정의와 정도가 깊은 골짜기에서 허우적대며 수렁위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던 시월이었다. ‘세상은 슬픔뿐인데 슬픔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슬퍼하는 대신에 군중은 분노한다’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르던 가을이었다. 그야말로 혼미한 안개속을 걷고 있는 듯했던 위기와 혼란의 계절이 이제 가고 있나 보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雨後竹筍격으로 내걸리던 축제 열풍 현수막들이 위로의 춤을 추기도 하였다. 보은 농산물의 최대 판로인 대추축제도 막을 내리고, 우리 지역만의 강점을 살린 특색있는 콘텐츠와 브랜드화가 급선무임을 숙제로 남겨주었다. 세 번이나 꽃을 피우고 난후에야 열매를 맺는 삼고초려의 붉은 대추를 바라보며, 온 군민들은 많은 역경과 어려움을 공유하며 여기까지 다다랐다. 기필코 소소한 행복감을 선물하는 대추축제로 거듭나서 상생하고 발전할 수 있는 소망의 다리를 건너야 할 것이다. 대대손손 번영과 웃음이 넘치는 보은의 꽃으로 자리 잡아서 가을의 전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침에 태양이 찬란해 보이는 것은 어두운 밤을 잘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소망은 좌절, 실패, 슬픔, 불행, 고통 같은 것들을 통하여 더욱 선명해 지기 마련이다. 힘든 파도의 고통를 참고 견뎌내는 조개가 빛나는 진주를 품는 것처럼~ 비온 후에야 단단하고 굳게 다져지는 진흙땅처럼 ~ 만월을 꿈꾸는 초승달 처음의 마음처럼 말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이 피어나려면 이른 봄부터 소쩍새가 울기 시작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소쩍새보다 더 진한 울음으로 울어 준 온 국민의 분노가 헛되이 되지 않도록 기필코 이 땅의 민주주의 꽃도 활짝 피어나야 할 것이다.
 가을이면 지천으로 피어나 미소짓게 했던 정다웠던 코스모스 꽃길은 멀어져가도, 가을 햇살에 윤기나는 밤톨을 마주하노라면, 아직은 떠나간 사람들과 옛정이 목말라오는 시월이다. 시월은 오색찬란한 금수강산의 상징이요 아름다운 시상의 텃밭이며, 튼실하게 결실을 맺는 소망의 계절임에 분명하다. 촛불을 밝히고 밤새 읽을 한권의 책과 마주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가을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꽃잎이 시가 되고, 낙엽은 수필이 되어야 할 시월의 서정은 여전히 아름답고 찬란하게 흐르기에~~ 슬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멍먹하고 무감각해진 서로의 가슴마다 가을의 사랑을 아낌없이 보내줌이 마땅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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