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날’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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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날’에 부쳐
  • 최동철
  • 승인 2019.10.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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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요즘엔 이만치 늙은 것을 참 행복으로 느낀다. 한 친구는 청소년기에 요절했고, 병역복무 시절 한 전우는 지뢰 밟아 일찍 갔다. 죽마고우 한 명은 한창 때인 장년에 사고로 급사했고, 남은 친구 한 명은 말기 암과 사투 중이다.

 이나마 몸가눔하며 노인의 날을 맞았으니 분명코 행운의 돌봄이다. 이에 천지자연과 주변에 늘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만족함도 느끼려 한다. 부지불식간 이만큼 늙었지만 오늘이야말로 앞으로의 여생 중 가장 젊은 날이 아니던가.

 눈으로 본 것을 탐하지 않는다. 저속한 정치적 시류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내 것이라 고집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을 즐겁고, 베풀며, 편안한 마음으로 살다가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하여 흙이 되면 그뿐이라 거듭 다짐해 둔다.

 더욱 홀가분해지기 위해 의료보험공단에 가서 ‘연명치료거부사전의향서’에 서명을 해뒀다. 혹시 뇌사상태에 빠진 나로 인해 빚어질 보호자들의 난감한 고민에 대한 해결책이다. 늙은이의 지혜로운 배려인 셈이다.

 더하여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센터의 일명 ‘희망의 씨앗’이라는 장기·인체조직기증 희망서약도 해뒀다. 이제 심장정지나, 뇌사상태 또는 사후의 내 신체는 최대 9명의 생명을 살리고, 최대 100명의 낯모르는 환우들에게 생명을 유지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사용될 것이다.

 이 두 가지 정도만 해두어도 마음이 여유롭다. 어쩜 예전 노인들이 묻힐 산소 터 확인하고, 염습 때 입을 수의를 챙겨놓은 뒤에야 편안히 눈을 감았던 순리와 같을 것이다. 이렇듯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비로소 ‘꼰대’가 아닌 영혼이 자유로운 노인이 될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저물어간다는 것이다. 천진난만했던 아동시절로 되돌아 갈 수 없다. 혈기왕성했고 이성에 두근거렸던 젊은 시절도 더는 없다. 즐겁고 슬펐고 난감했던 일들을 정말 많고 많이 겪었다. 어떤 인연은 희열이었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됐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불편한 몸을 나 혼자만 느낄 수 있다. 통증도 홀로 느끼고 참아내야 한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세상 아무리 가까운 인연이라 하더라도 대신 아파줄 수는 없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게 마음이 제일 평안하다.
     
 10월은 경로의 달이다. 또한 10월2일은 노인의 날이다. 국가가 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공경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만든 기념일이다. 1997년 처음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으니 올해가 스물 두 번째다. 100세가 되는 노인들에게는 명아주로 만든 전통 지팡이 ‘청려장’을 증정한다.

 ‘때를 보아 알아서 저승에 간다’는 나이 백 살이 되려면 아직 한창 남았다. 그래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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