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개구리의 동해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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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개구리의 동해나들이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9.09.1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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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개구리는 산속 실개울에서 흔하게 보이는 개구리다. 개울바닥의 잔돌을 들치면 납작이 웅크리고 있다가 곧 들통난 자리를 옮긴다. 등은 울퉁불퉁한 녹색이고 배는 진한 빨간색에 검은 점들이 찍혀 있다. 우리 어릴 때는 이놈을 “비단개구리”라고 불렀다. 같은 이름인 “무당개구리”는 그 색깔이 무당들이 입는 녹색과 빨간 복색을 닮아서라고 생각된다. 무당개구리는 독이 있다고 들었다. 이놈은 산개울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옛날 우리집 우물 속에도 살고 있었다. 개울 옆에 있는 우물은 깊이가 3-4미터 정도되었고 물은 식수로 썼다. 아랫집 만돌이 엄마는 수시로 물동이를 이고 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가곤 했었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우물 안으로 들어가서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그 물속에 무당개구리들이 살고 있었다. 반쯤 물위에 떠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두놈 외에도 이끼 낀 축정석 위에 또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결코 깨끗한 우물이 아니었다. 다른 집의 우물도 아마 같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동네사람들은 그런 우물물을 먹으면서도 더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 물을 먹고도 아무 탈 없이 잘 살아왔다. 그런데 그 무당개구리들은 어디서 와서 어떻게 그 우물 속에서 살게 되었을까? 아마도 처음부터 우물 속에서 살지는 않았을 것이고, 주위를 지나다가 우물 속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영영 그 속에서 살게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일단 우물에 빠진 이후부터는 손바닥 만한 하늘만 바라보며 살았을 것이다. 간혹 운이 좋은 놈은 두레박물에 섞여 올라왔다가 기겁을 한 동네 아낙네들이 도랑으로 쏟아 버린 물과 함께 세상 밖으로 살아나간 놈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그 물속에서 그놈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올챙이, 무당개구리와 놀던 어린 시적의 추억이다. 그리고 어쩌다 나는 약 12-3년 전에 첩첩산중인 이곳 보은으로 이사를 와서 살게 되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시골생활을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모기, 뱀, 야생벌들이 우리를 환영하지 않았다. 농작물과 힘든 노동력을 여지없이 깔아뭉개버리는 잡초들이 우리를 더욱 괴롭혔다. 처음 한동안은 일부 하얀 눈을 가진 텃세꾼들(지금은 누구인지 다 알지만)이 괴롭혔다. 그들이 우리집으로 공원감시원과 경찰들까지 보내주었을 때는 질려버렸다. 꿈결같이 감미로운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들으면서 수확의 기쁨을 노래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의외의 이런 환경들이 학문연구와 진리탐구에 전념하려던 꿈과 여유마저 앗아가 버렸다. 물론 물맛이 좋고 공기가 맑고 참으로 순박한 사람들이 더러 있어서 위안이 되었다. 허나 봄철의 미세먼지는 바늘같이 가는 솔잎 사이사이도 통과할 수 있어서 서울의 오염도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몇 번에 걸친 배신자들을 생각하면 용렬한 마음이 앞선다. 해소엔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좁은 산골에 갇혀 살아서 마음마저 용렬해진 것인가? 이런 복잡한 생각들을 떨쳐버리려고 시작한 것이 바다 나들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도 또다시 동해로 나들이를 갔다. 서남해안은 바다에 섬들이 많아서 너저분한데 동해는 거치는 섬 하나 없이 지평선 끝 저 멀리까지 무한히 펼쳐져 있어서 시원하고 그것을 보는 내 마음도 한없이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손바닥만한 땅을 놓고 다투는 개미군상들이 보이지 않아서 좋다. 수천억 번 밀려왔다 나가는 새하얀 파도에 바위마저 가루가 되어 남은 하얀 모래사장을 거닐때면 내가 왜, 그 좁은 곳에서 아웅다웅하며 살아야 했던가 싶다. 몇발자국만 들여놓아도 바로 빠지는 가파르고 깊은 푸른 동해바다. 감포 앞바다에는 대왕암이 파도에 끄떡도 않고 지키고 있다. 죽은후 동해의 용이 되어 왜구를 지키겠노라고 바다에 장사지내 달라고 한 문무대왕의 해중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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