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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파르티잔
[1424호] 2019년 04월 25일 (목) 소설가 오계자 webmaster@boeuni.com

우리나라 마지막 파르티잔 정순덕 여사의 사연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생일 때 신문 기사였다. 정순덕 여인이 지리산 빨치산의 마지막 히로인으로 체포되었다는 보도였다. 당시 결혼 한지 두 달도 안 된 여인이 막연하게 남편을 찾기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무모한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 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기해년 4월, 바로 어제 중학교 동기 친구가 속리산에 왔다는 연락을 받고 반가워서 잰걸음으로 갔다가 진주에 사신다는 친구의 언니를 소개 받았다. 딸 부잣집의 막내와 졸수가 가까운 맏언니 사이라면서 웃는 표정과 순백의 헤어스타일이 돋보이는 참 우아한 분이다. 식사와 차도 함께하고, 세조길 저수지 위까지 드라이브를 하면서 대화 중에 내가 “진주의 여인들이 참 개성이 뚜렷하고 강한 편인 것 같아요.” 하며 논개와 정순덕 이야기를 했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정순덕 파르티잔이 주인공이 되었다.
언니의 말에 의하면 빨치산서 활약하는 남편이 그립거나 보고 싶어서라 기 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 정주삼은 정감록을 신봉하여 예언에 따라 십승지지(十勝之地)를 찾아 지리산 깊은 골짜기 정감록 신봉자들 아홉 가구가 사는 마을로 이주해서 살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물론 지금도 그녀를 두고 일자무식이라고 하지만 실은 황점 마을에 살 때 야학으로 한글은 터득을 했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정순덕 실록에도 끝까지 문맹소녀로 기록되어 있다.
열여섯 나이에 결혼을 했고 결혼 한 다음 달에 한국전쟁이 터졌단다. 남편 석성조는 인민군 치하시절에 로동당 당원으로 인민위원회에서 일을 했으니 인민군이 후퇴하고 부역자가 된 그는 보복을 피해 입산을 해서 본격적인 빨치산의 주요 역할을 한다. 그러니 남편 석성조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군경의 괴롭힘이 얼마나 심했을까. 매일 끌려가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시어머니를 잔인하게 죽이든 날 밤은, 동네 산기슭 비석에 묶어 놓고 석성조 찾을 방법을 생각해 두라고 했단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손목의 피부가 다 벗겨진 채 포박을 풀긴 했지만 집으로 갈 수는 없다. 그길로 입산 할 수밖에 없었다. 산속에서 소문 듣고 찾아 온 남편을 만나기는 하지만 겨우 한 달 만에 또 헤어진다. 연애는 물론 엄금이요, 부부도 함께하지 못한다는 빨치산의 규율 때문이다.   당시 빨치산이라고 해서 투철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같은 것이 있었을까 싶다. 단지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해서 가난한 서민에게 나누어 주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이론에 현혹되어 우리도 한을 풀어보자는 의지, 그 신념이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성공하면 우리들은 영웅이 된다는 꿈을 품고 목숨을 건 것이라 생각한다.
친구 언니가 새댁 시절, 정순덕의 재판이 있었는데 그날은, 진주 시민과 전국에서 몰려 온 기자들로 인해 법원이 심하게 북적거렸다고 한다. 또한 그 여인에 대한 소문은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을 만큼 기구했으며 비인간적이었다. 왜냐면 십여 년간 인적 없는 동굴에서 남자 동료와 둘이 숨어 지내면서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는 의사의 진료 결과에, 그럴 수 없다는 추측들이다. 그래서 생긴 소문은 그녀의 몸이 총상으로 인해 허벅지와 대퇴부 부위를 몽땅 잘라내어 흉하다는 둥 여자의 구실을 할 수 없다는 둥 차마 다 들을 수가 없다. 듣다보니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두고 호기심에 재미를 붙여 떠드는 입방아들이 너무나도 인간적이지 못하다. 수십 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전해 듣는 지금도 인간은 참 잔인한 동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생각해 보면 뼈에 저리도록 슬픈 그녀의 운명은 그녀의 죄가 아니잖은가. 우리나라의 수난이요, 나라의 불행한 역사 속에 휘둘린 희생자가 아닌가. 그래도 동족상잔의 비극에 억울한 희생양이 된 그녀를 동정하고 마음으로나마 부둥켜안아 주는 사람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우리 민족은 나라의 수난, 나라의 비극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백성의 희생이 참 많았다.
“언니, 그러고 보니 진주는 슬픈 여인들의 고장인가 봐요.”
언니는 어설픈 미소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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