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가능성 큰 훈민정음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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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가능성 큰 훈민정음마당
  • 남광우 보은신문 이사
  • 승인 2018.12.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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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26일 속리산 정이품송 주변에 개장한 ‘훈민정음마당’은 ‘세조길’에 이어 보은의 또 다른 관광명소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며칠 전 외부에서 온 손님들과 둘러본 현장은 아직 완성된 것이라 하긴 미흡 한 점이 있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한글을 테마로 했다는 점에서 무한한 확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훈민정음마당은 그간 한글창제와 신미대사의 연관성을 세미나나 뮤지컬 등을 개최하여 꾸준히 축적한 자료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만남의 문’, ‘인연의 문’, ‘창제의 문’의 3가지 테마로 되어있다. ‘만남의 문’엔 정이품송을 축소해 만든 조형물과 전망대, 세조 동상, 어가 행차 조형물이, ‘인연의 문’엔 신미대사가 세속에서 인연을 맺은 부모와 불가에서 맺은 스승 함허당, 수미대사의 조형물이, ‘훈민정음마당’은 한글 창제에 관여한 세종, 신미, 정의공주, 수양대군 등 7인과 그 숨은 이야기를 기록한 담장과 범종이 설치돼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한글은 세종 즉위 25년인 1443년에 창제한 후 정인지, 박팽년, 신숙주, 성상문 등 집현전 학사들에 의해 1446년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의 해설서가 편찬되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962년에 국보로 지정 되었고, 1997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귀중히 평가를 받고 있다. 한글은 30개를 넘지 않는 자모음으로 수천 개의 음절을 만들 수도 있고, 외국인도 하루 만에 표기법을 배울 수 있을 만큼 쉬운 문자다. 독창성과 과학적 원리를 갖고 있어 세계의 언어학자들에게도 찬사를 받고 있다.

 한글이 속리산과는 어떤 연관이 있어 이런 공원이 생기게 된 걸까. 한글은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 다양한 기원설이 있었다. 발견된 책에서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고, 인체 발음기관(자음)과 천지인(天地人) 원리(모음)에 따라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제자(制字) 원리도 설명돼 있어 세종의 한글 친제설이 정설이 되었다.

 그럼에도 신미대사(信眉, 1403~1480)가 한글창제 작업에 큰 도움을 줬다는 추정이 학계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고도의 창의적인 한글 창제 작업을 국사에 바빴을 임금이 혼자 했겠냐는 의문 때문이다. 어문에 정통한 누군가가 도움을 줬는데 그가 바로 신미대사라는 것이다. 신미대사는 영동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불가에 들어 줄곧 속리산 복천암에서 주석하였고, 복천암에서 열반했다. 당시 스님은 유일하게 범어(산스크리스트어)에 능통했던 학승으로 알려져 있다.

 한글과 범어는 많은 유사성이 있다고 한다. 세종은 복천암에 주석하던 신미대사로부터 집현전 학자들에게 범어의 자.모음을 설명하게 했다는 기록이 복천암사적기, 조선실록, 효령대군문집, 영산김씨 족보 등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한글 창제 초기에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등 불교와 관련된 서책이 발행된 것도 신미대사가 훈민정음 창제에 큰 기여를 했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신미대사가 한글창제에 기여했음이 숨겨진 것은 집현전 학자들 중에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를 배척하는 분위기와 스님을 보호하기 위한 세종의 신뢰 때문인데 세종은 임종을 앞두고 스님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라는 법호를 내렸다.
 
 한글은 민족의 자랑이지만 한자를 고집하는 선비들에 의해 수백 년 동안 외면 받았다. 124년 전인 1894년에야 비로소 조선의 공식문자로 선포되었다. 그 후로 일제 36년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으니 한글이 보편적인 나라의 문자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한글이 있었기에 광복 후 수십 년 만에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고, 글을 통한 지식의 축적으로 우리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왔다.

 법주사는 지난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우리나라 13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훈민정음해례본도 세계기록문화유산이다. 훈민정음의 산실인 세계유산 복천암, 신미대사와 세조가 함께 걸었을 ‘세조길’에 이어 ‘훈민정음마당’이 조성 되었다. 아직 조경이나 조형물이 생경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학술적인 고증도 더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꾸준히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여 제2의 한글박물관, 한글체험관, 노천학습장, 한글을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 등을 개발해 나간다면 ‘훈민정음마당’은 세계문화유산을 뒷받침하는 공원으로써 국민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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