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神仙)이 되려거든
상태바
신선(神仙)이 되려거든
  • 남광우 보은신문 이사
  • 승인 2018.10.18 13: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년 가을이 오면 자연이 주는 특별한 선물로 보은군이 시끌벅적해진다. 보은은 대추의 명산지기도 하지만 사과 맛좋기로, 송이향 그윽하기로도 으뜸이다. 지금은 함부로 남의 산이나 국립공원은 입산금지다. 몇 년 전만 해도 버섯 따러 인근 도시에서 오는 차가 산모퉁이마다 지천이라 '버섯보다 사람이 더 많더라'는 말도 있었다. 버섯 내음이 온 동네를 흔들고 나면 푸른 하늘 아래 붉은 열매가 빼곡히 열린다. 대추다!
버섯이 대지의 힘으로 자란다면 대추는 햇살과 바람으로 탱탱해진다. 때를 맞춰 '대추축제'가 열린다. 지난 주말 시작된 축제는 전국 군 단위 지역축제 중 가장 클 것이다. 열흘이란 기간도 길지만 흥행 면에서 어떤 지역축제보다 훨씬 낫다. 열흘 동안 보은은 축제의 열기에 빠진다.
한쪽에서 중부권 유일 소싸움대회가 열려 온순하던 황소들이 기운을 겨루고, 주무대엔 흥겨운 쇼가 진행된다. 천변하상의 수백 동 천막엔 농부들이 수확한 농산물이 뽐을 내고, 장터 가마솥에선 국밥의 김이 안개처럼 피어나 식욕을 자극한다. 축제가 버라이어티하게 변모한 건 자잘한 여러 개의 축제를 일거에 통합해 ‘제대로 된 축제’로 만든 정상혁 군수의 발상이다.
축제기간 보은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획기적으로 많아졌다. 설령 축제에 오지 못한 이들도 '열흘이나 축제를 하는 걸 보면 보은 대추가 대단하긴 한가보다'라고 은연 중 알게 될 것이다. 떠들썩한 축제를 통해 시나브로 보은대추는 전국적 명품이 된다.
애기 돌상이나 폐백에도 쓰이는 대추는 제사에도 필수다. 인간 대소사를 함께하는 과일이다. 젯상(祭床) 첫 머리에 대추가 놓이는 건 왕을 상징함이다. 중국에서도 대추는 귀한 대접을 받아 신선이나 먹는 과일로 통한다. 천살 쯤 된 신선들이 문장대 구름 위에서 대추를 잡숫다 씨를 ‘툭’ 뱉으니 그게 여기 떨어져 보은이 ‘대추골’이 된 건 아닐지...!
보은대추는 각종 지리지에 임금께 진상올린 기록이 많다. 그러나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비로소 ‘대추전도사’ (고)이향래 군수의 열정에 많은 농가들이 호응해 묘목을 심으니 명성을 되찾게 되었다. 보은대추가 좋은 품질을 유지하는 것은 기후와 토양이 잘 맞는 이유도 있지만 전국유일 대추연구소나 농업기술센터에서 품종개량 등 끊임없는 연구, 군에서 지원하는 비가림 시설로 크기와 당도를 더하기 때문이다.
올 대추는 폭염에 시달리긴 했지만 풍년이다. 소비자로선 가격걱정이 조금은 덜하다. 나는 맛좋은 생대추를 사서 술을 담그라 권하고 싶다. 담근 지 몇 달 지나 함박눈 내리는 날, 좋은 벗을 청해 대추술 나누며 청산을 바라보다 해가 저물면 당신도 신선이 되는 거다.
이십 수 년 전, 시인 한 분이 보은에 오셨다. 법주사 오리숲을 거닐며 담소를 나눴던 그 분은 평론, 출판, 편집인으로 현란한 활약을 보여준 장석주 시인이다. 2005년 '대추 한 알'이란 시를 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그렇다! 대추 한 알, 그것은 온 우주가 힘을 모아 만든 결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