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과 오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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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과 오장환
  • 최동철
  • 승인 2018.07.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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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은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 소파 방정환의 서거 87주년째 날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아동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이자 ‘어린이날’ 창시자다. 천도교에서 발행하던 ‘개벽’의 일본 도쿄특파원으로 활동 중이던 1923년3월20일 하숙집에서 최초로 ‘어린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색동회’를 조직하는 한편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작은 물결’이라는 의미의 ‘소파(小波)’라는 호는 동학(천도교)의 창교자 수운 최제우의 저서 ‘동경대전’에서 비롯됐다. ‘용담의 물이 흘러 온 세상 바다를 이루는 근원이 되고…’구절에서 착안했다.

 그는 천도교 3대 교주인 손병희의 사위다. 의암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한 뒤 203개의 사립학교를 원조하는 등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사업가였다. 3·1운동의 주역으로 독립선언문과 공약삼장을 비밀리 인쇄 배포했던 독립선언 33인의 대표자였다.

 방정환은 이런 환경에서 천도교 사상에 심취해 청년결사조직인 ‘경성청년구락부’를 조직했고, 기관지이자 문예동인지인 ‘신청년’을 발행했으며 ‘신여성’ ‘학생’ 등의 잡지도 잇따라 발간했다. 뿐만 아니라 동화대회, 소년문제 강연회, 소년지도자대회 등을 주재하며 사회계몽에도 앞장섰다. 그는 이 많은 업적을 불과 인생 31년 만에 모두 이루어내고 세상을 떠났다.

 방정환보다 19년 늦게 때어난 오장환은 서로 간 면식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방정환이 1931년7월23일 이승을 떠나고 2년 뒤인 1934년 2월에 그가 창간한 잡지 ‘어린이’에 16살인 오장환이 ‘바다’ ‘기러기’ ‘수염’이란 동시를 발표했다.

 “눈물은/바닷물처럼/짜구나.//바다는/누가 울은/눈물인가.”(’바다‘)
 “기러기는/어디로 가나.//별도,/달도,/꽁-, 꽁-, 죄 숨었는데//촛불도 없이 어떻게 가나.(’기러기‘) ”나는, 나는,/할아버지마냥 늙어서/수염 나거든/누가, 누가,/더 긴-가/내기 할 테야“(’수염‘)     

 오장환은 1930년 후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재시인이다. 충북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명이자 역대 우리 고장 보은군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단 한 편의 친일시를 쓰지 않았다.

 단지 나라 없는데서 비롯된 방황과 세계사적 이데올로기로 인한 정체성 혼란을 겪어야 했다. 어둡고 긴 궁핍한 시기를 견뎌내야 했다. 월북시인이란 낙인이 찍혀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6·25전쟁이 한창 때던 1951년, 소련의 모스크바 볼킨병원에서 34살의 나이로 병사했다.

 방정환과 오장환, 두 사람 모두 30대 초반의 그다지 길다할 수 없는 삶을 살다갔다. 그러나 그 삶은 열정적이었다. 순전히 민족애적인 삶이었다. 그들의 삶이 진정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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