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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 없는 주막 ‘판문점’
<340>
[1375호] 2018년 04월 26일 (목) 최동철 webmaster@boeuni.com

  1976년 봄날 육군에 입대했다. 증평 신병교육대에서 후반기 훈련까지 마친 뒤 밤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트럭을 타고 전방으로 갔다. 험악하기로 소문난 중동부전선 ‘백두산부대’였다. 시피(CP)에서 디엠제트(DMZ)배속부대로 가기위해 해질 무렵 전령과 함께 산길을 탔다.

 한밤중 낯선 산행은 신병에게 고역이었다. 소총과 더블 백을 맨 몸통과 얼굴이 땀범벅이 된 자정 무렵 고지 벙커에 도착했다. 당시는 전깃불도 없었다. 침침한 호롱불에 비친 산적같이 무시무시한 고참들의 환영 속에 이내 잠에 떨어졌다.

 6월19일, 3일간의 전투가 발생했다. 임무를 마치고 월북하려던 무장간첩 3명과의 전투였고 모두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문제는 그 후의 트라우마였다. 북괴군 특수부대가 복수하기위해 곧 침투해 올 것이란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초긴장상태의 나날이었다.

 그러던 두 달 뒤 ‘8·18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터졌다. 공동경비구역(JSA)내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 의해 도끼로 살해당했다. 전시상태에 준하는 최고의 비상이 걸렸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초비상사태가 있었지만 다행스레 무사히 제대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취임 선서한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외교에 적극적이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남북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이 판문점을 비롯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개최됐다. 통일부가 없던 시절이라 ‘남북대화사무국’이 그 역할을 했다.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 아마도 이때가 남북한이 대립과 대결보다는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첫 번째 시기가 아닌가 한다. 당시 취재를 위해 판문점에 가면 북한 측 기자들과의 대화도 자연스레 이뤄졌다.

 이들은 그날의 회담내용보다는 정치적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보다 주요한 임무였던 것 같았다. 이를테면 국회수첩이나 정치시사 월간지 등을 주면 임수경의 북한 내 활동사진 등을 답례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해 오기도 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의 판문점 얘기다.

 판문점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당시 널문리에 있던 ‘번지 없는 주막’에서 접촉한 데서 유래한다. 1953년 휴전 협정을 논의할 당시 중공군들이 회담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널문의 한자어 표기 ‘판문(板門)’으로 여기에 주막을 의미하는 ‘점(店)’을 붙여 판문점이 됐다.

 이곳에서 내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역사적 정상회담이 열리고 세계에 생중계된다.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기존 3대 의제와 더불어 판문점 수시 정상회담 정착,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이산가족 상봉 실현 등이 주요 의제다. 취재진도 34개국 외신기자 858명을 포함해 족히 3천명을 넘어설 것이라 한다.
 역사의 선상에서 과연 번지수를 찾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있을까 감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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