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한마음체육대회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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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한마음체육대회 응원
  • 최동철
  • 승인 2017.08.3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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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하는 게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유럽 특히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구빈법이 1601년 성문으로 제정되기 이전까지 장애인들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 구제는 교회와 성당의 우선적 의무였다.

당시 교회나 성당은 들어 온 헌금의 삼분의 일 내지 사분의 일을 장애인이나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데 사용했다. 또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쉼터와 생필품 등 필요한 것을 제공하기도 했다. 국가는 대신 종교인에게 면세나 감세 특권을 부여했다.

동북아 정세가 혼란기였던 구한말,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힘이 없었고, 궁극에는 나라마저 빼앗겼던 시기였다. 나라답지 못했으니 구빈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구빈역할 거의는 종교의 몫이었다. 그것도 본국의 지원을 받는 외국선교사들에 의해서다.

소외된 이들을 헌신적으로 돕는 종교적 의무를 실천했던 선교사 중에 로제타 셔우드 홀여사(한국명 허을=許乙)가 있다. 미국 뉴욕주 출신으로 감리교 선교사다. 교사를 하다 의료선교사가 되기 위해 의대에 진학 의사가 됐다.

대한제국 시절이던 1890년 서울 정동에 왔다. 선배 선교사가 설립했던 우리나라 첫 여성전문병원 보구여관에서 첫날 4명의 환자를 시작으로 열 달 동안 무려 2천명이상을 치료했다. 당시 만해도 배를 째고 맹장수술을 할 때는 세인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간호원 양성과 여자 의학반을 창설해 한국인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과 의학박사인 박에스더를 배출했다. 뒤따라 한국에 들어와 결혼한 남편은 평양에 병원을 설립했으나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또 한국에서 낳아 기른 딸 마가렛도 감기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이런 아픔 속에서도 그녀는 1896년 우리나라 최초의 특수학교인 평양여자맹아학교를 설립했다. 간호보조원의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린 딸에게 뉴욕 점자법에 한글을 적용해 한국인 맹인들이 쓸 수 있는 점자를 개발해낸 것이 시발점이 됐다.

1917년 서울로 자리를 옮겨 보구여관의 후신인 동대문부인병원(현 이대부속병원)에서 의사 겸 약제사로 활약했고, 여자의학반을 조직하여 한국인 여자의사 양성을 시작했다. 이 의학반은 후일 경성여자의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모체가 됐다.

이렇듯 많은 비장애인 홀 여사의 업적 중 크나큰 결실은 장애인을 위해 이뤄낸 점자책이다. 그로 인해 시각장애인들은 보이지 않은 세상을 글로 읽고 쓰게 됐다. 오는 9월 8일에는 보은군 장애인 한마음체육대회가 열린다. 그들 스스로가 화합과 위로 격려가 되기 위한 대회다,

국적을 떠나 세상 장애인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홀 여사처럼 장애인을 격려하고 응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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