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虛名)을 탐한 어리석은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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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虛名)을 탐한 어리석은 당나귀
  • 최동철
  • 승인 2017.08.2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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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보은군청 정문을 들어설 때마다 헛웃음 짓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고하면 바로 입구 오른쪽의 ‘정문이전 기념식수’와 ‘보은군수 정상혁’이라는 표지석이다. 대문을 옮긴 것이 그토록 대단하고 힘들고 훌륭한 일이었는지 군민 입장에선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난 6월 언론에서도 ‘보은군수 정상혁’이라는 기명 표지석이 과도한 편이라며 비판성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속리산 솔향공원의 착공, 완공, 준공과 전혀 무관한 정군수가 솔향공원 현판 말미에 ‘보은군수 정상혁’이라 덧붙인 것은 또 하나의 실소거리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리석고, 탐심 많고, 고집스런 동물의 대명사는 단연 나귀(donkey)다. 당나라에서 들여온 나귀라 하여 우리나라에선 ‘당나귀’라 부른다. 말과 비슷하나 덩치가 작고 토끼처럼 쫑긋한 귀를 가졌다. 온순하고 튼튼해 예수께서도 예루살렘 입성 때 나귀를 탔다.

하지만 당나귀는 자신의 모습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나귀에 얽힌 우화가 있다. 옛날 옛적 제신의 신 제우스에게 나귀가 찾아와 항의했다. 왜 자신을 이리 못나게 만들어 뭇 동물들로부터 괄시를 당하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존경받는 사자, 호랑이만큼은 아니더라도 멸시당하지 않을 모양으로 다시 성형해달라며 떼쓰고 졸라댔다. 날만 새면 쫓아다니니 제우스도 지치고 말았다. 그래서 ‘희한한 울음소리’를 선물로 주며 다독거렸다. 덩치에 비해 우렁차고 째지는 나귀 울음소리는 그때부터 비롯됐다.

어쨌든 나귀는 숲속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그 괴상한 소리로 사방팔방 울어댔다. 뭇 동물들은 공포에 떨었다. 소리만 들려오면 꼬리 내리고 도망쳐 숨기에 바빴다. 도대체 어떤 무시무시한 동물이기에 울음소리가 저리 으스스할까하고 모이면 화두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자화자찬, 존경받고 있다고 생각한 나귀는 울음소리를 더 크게 내며 설치고 다녔다. 급기야 기고만장해진 나귀는 뭇 동물들에게 ‘당나귀’라는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숲속이 제 혼자만의 세상인 냥 곳곳에 ‘당나귀’라는 푯말을 마구잡이 세웠다.

푯말을 본 뭇 동물들이 이젠 위대한 참 모습을 보여 달라고 읍소하며 하소연을 했다. 그래도 나귀는 결코 나서지 말아야 했다. 헌데 제 본 모습을 망각해 버린 나귀는 어리석게도 으스대며 숲속에서 걸어 나왔다. 크게 실망한 동물들은 몰매질을 해댔다.

대륙 최초 통일제국 진나라의 틀이 된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가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스스로 어리석은 줄 아는 자는 적어도 그만큼은 현명하다. 어리석은 자신을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자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자라 하겠다’

장자도 말했다. ‘공인(公人)이 당연히 한 일은 공(功)이 아니다. 고로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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