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바보’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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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바보’를 기다리며
  • 최동철
  • 승인 2017.05.04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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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부처님 오신날’이었다. 뭇 중생이 ‘생노병사’ 윤회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과응보’의 이치를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바람처럼 물처럼 인연 따라 살며, 현실의 고통은 전생의 업보이니 겸허히 받아들이고, 어떤 것도 욕심내지 말라 했다.

‘부귀와 권력 만능주의’의 현실에서 보면, 어쩜 바보 같은 이 같은 수행을 한 승려 중에 대흥(大興)스님이 있다. 청나라 말기에 중국 4대 불교성지 중 한 곳인 안후이성 구화산에서 득도, 열반했다.

대흥이 대덕 고승으로 추앙받는 데에는 생전, 바보 같은 일화 한 토막과 생후, 열반모습 때문이다. 입적 후 항아리에 넣었다가 3년 후 열어봤더니 피부가 여전히 부드러운 살아생전 후덕한 모습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생전 일화는 이러하다. 구화산 아래, 부유한 한 가문이 살고 있다. 이 집에는 금지옥엽 귀한 딸이 있다. 좋은 집안의 자제와도 이미 정혼한 상태다. 헌데, 혼인 3년을 앞두고 딸이 출산을 했다. 난리가 났다.

부모의 추궁과 강박에 못 이겨 딸은 “절에서 참배하던 중, 대흥화상에게 겁간을 당했다”고 실토했다. 화가 치민 부친은 장정들을 데리고 절에 가서는 대중 앞에서 다짜고짜 대흥스님을 때리고 모욕하며 아이를 떠맡겼다.

대흥은 아무런 항변이나 동요 없이 아이를 받아 안았다. 대흥의 명성과 위신은 단번에 땅바닥에 떨어졌고 조소와 멸시를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대흥은 '파계승' 소리를 감수하며 젖동냥을 해 아이를 열심히 양육했다.

어느덧 3년이 지나 딸은 정식으로 혼인을 했다. 신혼 첫날밤에 신랑은 아이의 행방을 물었다. 딸이 낳았던 아이는 원래 정혼자의 혈육이었던 것이다. 혼전 ‘속도위반’이었던 관계로 이를 숨기기 위해 다급해진 딸이 대흥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모함을 했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양가 부모는 대흥에게 용서를 빌었다. 대흥은 기뻐하며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아이를 공손하게 엄마 품에 안겨주었다. 이때부터 뭇 승려들과 주민들은 대흥스님을 더욱 우러러 받들고 존경하게 되었다.

사랑과 나눔의 구도자로 살다간 김수환 추기경도 바보라 칭하며 가장 낮은 곳에 서려했다. "내가 잘 났으면 뭘 그렇게 크게 잘 났겠어요. 다 같은 인간인데.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니 내가 제일 바보스럽게 살았는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스스로 대통령이길 바라는 후보 중에 과연 누가 ‘거룩한 바보’일지 알 것도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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