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립 미술관 건립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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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립 미술관 건립에 대한 소고
  • 최동철
  • 승인 2017.03.1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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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중순쯤부터 한 편에선, 열악한 재정의 보은군이 군수 독단으로 불요불급한 미술관 건립에 예산을 낭비하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지역 문화수준 향상과 속리산을 수학여행 1번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미술관 건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한편 보은군의회는 집행부가 ‘기부금품 모집·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과 ‘의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협약을 체결했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으나 ‘위법으로 볼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최근 받았다. 미술관 건립은 이제 적법성 논란을 떠나 실효성 여부를 따지는 공방만 남게 됐다.

창운(蒼暈)은 1933년4월21일 보은군에서 태어난 이열모 동양화가(한국화)의 아호다. 달 언저리에 둥그렇게 생기는 푸르스름한 테, ‘달무리’를 의미한다. 아호가 말해주듯 그는 밝은 달의 화려함보다 달빛을 돋보이는 후광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서울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미국 조지워싱턴대와 하워드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성균관대 사범대학장,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했다. 그가 명성을 얻은 데는 기존 동양적 전통 산수화에 현대화 기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실경산수화는 현장에서 밑그림(스케치)을 그려오거나 사진을 찍어 화실에서 작품을 마무리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창운은 현장에서 직접 작품을 완성하는 독자적 기법을 시도했다. 당시로선 선구자적인 역할이었고 그야말로 진짜 ‘실경산수화’를 화폭에 담아냈다. 결국 그의 방식은 한국화단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됐다.

2007년 미국으로 이주한 창운은 2012년 10월, 팔순 기념 회고전을 서울과 이천 월전미술관 등에서 열었다. 주요작품 70여점이 전시됐다. 이 때 창운은 “중요한 작품은 남의 손에 있어 모두 빌릴 수는 없고 일부 몇 점은 빌려와 전시하게 됐다”고 출품작에 대해 설명했다.

이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작가가 인정하는 좋은 작품은 거의 대부분 남의 손에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창운이 별세한 2016년2월24일 이전인 2015년 9월에 보은군이 기증받은 작품, 대부분은 작가 입장에서도 중요한 작품은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폐일언하고 △창운 이열모 화백은 자랑스런 보은출신 동양화가가 분명하다 △다만 기증한 작품 중에 작가를 대표할 중요 작품이 몇 점이나 될지가 관건이다 △생전 고향의 후학양성이나 발전에 직접적 기여한 바는 없다고 한다. 등등은 군립 미술관 건립의 판단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미술관 건립을 막무가내 환영하는 측은 정작 본인부터 미술전시관을 찾아가 관람해 본적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가까이라 할 청주에 있는 ‘운보의 집’을 가본 적이 있기는 한가? 한 번 가보았는가 두 번 가보았는가?
전국의 시·군립 미술관 대부분은 유지관리비조차 힘겨워하는 처지라고 익히 보도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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