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民意)에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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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民意)에 따르라
  • 최동철
  • 승인 2016.12.0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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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성난 민심의 행렬과 함성이 대단하다. 갈수록 기세가 더해지고 있다. 촛불이 횃불이 되려하고, 광화문에서 여의도로 번져나갈 태세다. 지난 6차 집회 때는 헌정사상 최대인 232만 명의 인파가 전국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한결같이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을 내세우고 있다.

사실 그랬다. 우리나라에 있어, 죽음조차 불사한 민초의 단결과 함성은 늘 나라가 곤궁에 처했을 때 터져 나왔다. 나라꼴이야 어찌돼든 당리당략에 찌든 무능한 위정자들을 대신해 그리했다. 나라를 지켜냈거나 바로 잡은 건 그들이 아니라 늘 민초들이었다.

조선시대 가장 비겁하고 무능했던 왕,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제일 먼저 한 일은 후궁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일이었다. 길바닥에 엎드려 울부짖는 백성들에겐 ‘돌아올 테니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실은 여차하면 명나라로 망명하려 접경지역인 의주까지 몽진했다.

민초들은 그래도 예서제서 일어나 의병과 승병이 됐다. 죽창을 만들고 괭이와 몽둥이를 들어 침략자와 맞섰다. 아녀자들도 돌멩이를 행주에 담아 적을 향해 돌팔매질을 했다. 돌아 온 선조는 명나라 장군을 신 대하듯 했다. 반면 이순신장군이나 일부 의병장은 하옥 당했다.

무능하기로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대한제국 고종황제도 한심했다. 왕권을 유지하려 우리 땅에 외국 군대를 불러들였다. 청나라 군대가 들어오고 일제군대가 들어와 전쟁을 벌였다. 급기야 러시아까지 끌어들여 우리 땅에서 우리 임금이 여장(女裝)을 한 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창피한 짓거리도 했다.

당시에 민초들의 함성이 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이다. 동학교도 전봉준은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히 하며, 일본오랑캐를 내쫓고, 탐관오리를 모두 죽이자는 행동강령을 내세웠다. 고종은 관군뿐만 아니라 일제 군대에 까지 도움을 요청해 자국민을 진압했다.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를 바로잡기위한 민초의 함성도 있었다. 4·19혁명과 6·10민중 항쟁이다. 4·19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정권유지를 위한 독재와 관료의 부정부패, 극도의 부정선거 등을 단죄한 학생의거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하야했다.

6월 항쟁은 전두환 정권의 지속적인 정권연장 움직임에 대한 성난 민심의 투쟁이었다. ‘4·13호헌조치’에 맞서 당시로선 최대였던 24만 여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분연히 들고 일어났다. 결국, 직선제 개헌과 제반 민주화조치 시행을 약속하는 ‘6·29선언’을 이끌어냈다.

우리 국민들은 이처럼 무능하거나 썩어빠진 정권을 바로잡기위해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건 때 기름제거를 돕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100만 명의 국민이 자원봉사를 했다. 아이엠에프 환란 때도 자발적 ‘금 모으기‘로 세계인을 놀래 켰다.

우리 국민들은 늘 현명했고 지혜로웠다. 고로, 박근혜 대통령이여! 위정자들이여! 민의에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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