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미생지신(尾生之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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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미생지신(尾生之信)
  • 최동철
  • 승인 2016.12.0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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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1월, 세종시를 행정수도가 아닌 기업 및 교육중심의 도시로 만들자는 수정안을 놓고 당시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가 대립했었다. 정몽준은 수정안에 반대하는 박근혜를 융통성 없이 원칙만 고수하는 어리석은 미생과 같다고 힐난했다.

박근혜는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고, 그 애인은 진정성이 없었다.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되고, 애인은 평생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세종시 원안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공약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소신이나 생각이 변했다면 판단력의 오류’라며 정몽준을 비롯해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사람인 미생은 한 여인과 다리 아래에서 만날 약속을 했다. 미생이 그녀를 기다리던 중, 때마침 많은 비가 내려 개울물이 불어났다. 그럼에도 다리 교각을 붙든 채 여인을 기다리다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고사성어 미생지신(尾生之信)의 이야기다.

이를 두고 찬반 논란이 있다. 신의에 초점을 맞추면 사랑하는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 감동적 사랑이야기다. 목숨에 포커스를 맞추면 약속이라는 명분에 집착해 가볍게 목숨을 내던진 ‘어리석은 놈’이 되고 만다. 후자 논리가 보다 우세라 할 수 있다.

장자는 ‘(이런 인간은) 책형(?刑)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나,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가 없다. 쓸데없는 명목에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여 본연의 삶을 생각지 못하는 놈이다.… 미생이 물에 빠져 죽은 것은 신의의 우환(憂患)이다’고 혹독히 비판했다.

어쨌든, 박근혜는 미생지신을 거론한 뒤부터 자신도 미생처럼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대선 때 까지는 ‘원칙과 신뢰’를 자신의 이미지로 각인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선거 공약을 발표할 때마다 ‘신뢰’를 강조했다.

많은 유권자가 ‘미생지신’을 내세운 박근혜를 신뢰했다. 진보적이라 할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정책을 내세웠어도 믿었다. 기초의원뿐만 아니라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까지 폐지하겠다는 약속도 믿었다. 만65세 이상 노인 누구에게나 20만원 씩 주겠다는 공약도 믿고 지지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서는 말과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경제민주화는 ‘창조경제’로 탈바꿈했고 “기초 무공천 공약은 신중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을 바꾸며 “정당공천 폐지는 위헌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몇몇 주요 공약이 이런 논리로 일부 수정됐거나 아예 파기됐다.

미생의 신뢰를 실천하겠다던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후엔 미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애인처럼 돌변했다. 있어서는 안 되는 황당한 일들이 국정 일부에서 행해졌다. 비선실세라 불리는 이들이 국정을 제멋대로 농단하며 호의호식했다. ‘원칙과 신뢰’는 식언(食言)이 됐다.

미생은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 박 대통령은 요즘 살아 남기위해 국민과의 약속도 깼다. 배신당한 민심은 물밀 듯 거세진다. 귀감이 될 것인가, 손가락질을 받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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