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청부가 있어 세상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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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청부가 있어 세상 살만하다
  • 보은신문
  • 승인 2016.09.0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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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권력 중심부의 몇몇 사람들에게서 논란을 일으킨 소재는 모두 ‘재물’과 관련되어 있다. 권력을 갖기 위해 청문회에 선 이들의 면면을 보면 한결같은 재산가들이다. ‘권력과 금력’이 이미 한 통속이 된 세태를 반영해 준다.

자연스레 청문회의 관심사도 권력을 쥘 당사자의 업무능력 파악보다는 재산축적의 정당성 여부에 초점이 맞춰진다. ‘탐욕의 노예’나 ‘갑질’의 당사자는 아니었는지를 집중 추궁한다. 대부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심을 채운 탁부(濁富)로 드러나 씁쓰레함을 준다.

부정축재자나 재력으로 횡포를 일삼는 자, 제 재물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졸부(猝富)를 일컫는 탁부의 반대는 청부(淸富)다. 부의 크기와 상관없이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쌓아올린 재산가다. 더하여 그 재력으로 사회를 이롭게 하는 존경스런 진짜 부자를 이른다.

400년 전통의 12대 만석꾼 경주 최부자집이 청부다. 최국선은 ‘재물은 똥오줌과 같은 것이라서 쌓아두면 썩어 악취가 나지만 골고루 나눠주면 좋은 거름이 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유명한 가훈을 남겼다.

전남 구례에 가면 조선 영조 때 건축한 류씨 문중의 양반가옥 '운조루'가 있다. 구름 위 새가 사는 집이란 의미다. 그 집 뒤꼍에 쌀 두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큰 뒤주가 있다. 쌀 꺼내고 닫는 마개 뚜껑에 ‘누구나 열수 있다’는 ‘타인능해(他人能解)’란 글자가 있다.

배고픈 사람은 누구나 쌀을 덜어가 끼니를 이으라는 청부의 ‘나눔과 베품’ 실천이다. 쌀을 덜어가는 사람이 창피해 자존심을 다치지 않도록 뒤주는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두었다. 아무런 조건도 내걸지 않았다. 으스대거나 생색 내지 않았다.

4대강 개발 여파로 극심한 녹조라떼에 걱정이 태산인 낙동강 물줄기 옆 안동 하회마을에는 돌 상자 ‘담연제(澹然齊)’가 있다. 담벼락 밖에서 돌구멍에 손을 집어넣을 수 있다. 그 안에 는 엽전이 있었다. 가난한 이들은 그 돈을 꺼내 고마운 마음으로 요긴하게 사용했다.

한말과 일제치하에서 혁명가, 항일독립투사, 아나키스트, 민족주의자였던 김산(金山)이란 이가 있었다. 본명은 장지학(張志鶴)으로 부자 집안 자손이었다. 미국 작가 님 웨일스가 쓴 소설 ‘아리랑’의 주인공이다. 영화배우 장동건이 주연한 ‘아나키스트’의 인용인물이기도 했다.

김산은 집안의 엄청났던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기부했다. 정작 딸이 혼인할 적엔 옷 한 벌, 신 한 켤레 변변히 못해 보냈다. 돈의 용처를 몰랐던 딸은 아버지를 몹시 원망했다. 아버지가 처형당한 후에야 사실을 알고 아버지의 깊은 맘을 헤아리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 굳이 이름 밝히길 사절한 한 사람이 보은자영고를 방문해 1억3백만 원을 기탁했다. 장학금과 도서구입 대금이다. 지난 2월에도 415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했었다. 하는 형태로 보아 그는 부자가 분명하다. 그것도 청부로서 말이다. 이런 분이 있어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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