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발전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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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발전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소방관”
  • 보은신문
  • 승인 2016.08.2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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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사람 - 보은소방서 고근수 소방관
최근 청소년은 물론 취업을 희망하는 직업 선호도중 우위를 차지하는 분야가 공무원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라는 단편적인 면을 떠나 지역사회에 대한 투철한 봉사정신이 필요로 하는 소방관에 대한 관심은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청소년들에게 소방관에 대한 매력 있는 직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가운데 전문성과 강인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소방관에 대한 직업과 어떠한 자질들이 필요한지 청소년들과 함께 고근수 소방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편집자 주>

▲ ‘고맙다’는 한마디에 보람을 느낀다는 고근수 소방관.
- 소방관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군대 제대 후 바로 소방서에 들어왔고 소방관을 한 지는 20년이 넘었다. 1995년도 제대했을 때 KBS에서 했던 ‘긴급구조 119’라는 프로가 있었다. 지금은 사건, 사고가 나면 사람들이 바로 119에 신고를 하고 소방관들이 출동하지만 그 전에는 소방관은 불만 끄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 프로에서 소방관들이 산악사고나 교통사고 등에 출동하는 것을 리얼하게 다뤘는데 인기가 매우 좋았다. 그 뒤로 소방관들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1994년도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도 삼풍백화점 붕괴를 보면서 남들을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해서 소방관을 지원하게 된 것이다.

- 어렸을 때부터 꿈 꾸셨던 건가요?
어렸을 때는 꿈이 자주 바뀌는데 소박하게 전업농이 하고 싶었다. 고향이 마로면이고 시골 깡촌이었는데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처럼 꿈을 꿨다. 학창 시절까지 생각했었는데 이런 건 장가를 못 가서 포기했다. 그렇게 꿈이 중간중간 바뀌면서 이렇게 소방관을 하게 되었다.

- 현재 소방서의 체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요?
보은 소방서의 체계는 서장님을 비롯해 보은군에 약 100여명의 직원이 근무를 한다. 현재 소방서는 소방행정과, 대응구조구급과, 예방안전과와 같이 3개의 과로 구성되어 있다. 3개의 과는 사무적인 일을 담당하지만 내에서 직원들 수행 복리부서가 있고 소방차를 운영하려면 관리를 해야 하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예산편성도 해야 되고 현장에서 종합적인 지휘를 하기도 한다.
저는 대응구조구급과로 사고 발생 시 현장에 츨동해 조사를 하고 발생보고를 한 뒤 언론에 보도를 하기도 하고 나중에 교육 자료로 쓰기도 한다. 그리고 예방안전과는 쉽게 얘기해 예방에 관련된 일을 하지만 특별소방검사를 나가서 사고가 나는 걸 미리 방지 한다 던가 건물을 지었을 때 건물 안에 소방시설(소화기, 화재감지기)의 인허가를 내주는 부서이다. 그 외 부서는 건물에 위치해 사무적인 일을 한다. 구급차나 소방차에 따라 활동하는 보은구조대와 3개의 119안전센터가 있다. 그리하여 보은군 관할을 관리한다.

- 소방관이라서 보람을 느끼신 적은 언제이신가요?
아무래도 직업이 사람이 다쳤을 때 구해주는 게 보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20년을 이 일을 해오면서 구급차도 해봤는데 그 당시에는 시골할머니들 깨서 아프시면 택시를 타고 가던 가 이웃집에 부탁을 해서 병원을 가셨다. 소방관들이 초창기에 구급차를 운영 했었을 때 무료로 도와드리니깐 할머니들이 무척 고마워하셨다 “어디 아프면 말씀하세요. 모셔다 드릴게요” 라고 말해 드리면 자식보다 낫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정말 보람을 느낀 것 같았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신가요?
청주에서 근무도 해보고 증평에서도 근무를 해봤지만 보은에서 가장기억에 남는 사건을 작년에 날씨가 무척 추웠던 12월 달에 교사리에서 새벽에 주택 화재사고가 났었는데 2분이 화상을 입으셔서 응급처치 후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을 했는데 이틀 만에 폐혈증을 동반한 전신화상으로 두 분이 돌아가셨다. 거의 대부분은 연기 흡입이나 화상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최근에 가장 안타까운 일이였다. 또 2013년도에 보은 유흥업소에서 화재가 나서 사상자가 8명이 발생했다.
거기도 화상을 입은 환자가 있었는데 얼마가지 못해 사망하셨고 병원에서 고생하시다가 사망하신 분들도 있었다. 산악사고로 사망하신 분들도 있는데 그분은 실종자신고가 들어와서 핸드폰 위치 추척 후 발견했는데 사망하신 분이 있었다.

- 소방관은 위험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족한 게 많은데 발전되어야 할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소방관들은 지금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이다. 삼교대 인원으로 하다보면 인원이 좀 있어야 되는데 최소한의 인원으로 빡빡하게 하기도 한다. 어떤 직원이 휴가를 갈 수도 있고 병가를 낼 수도 있고 어떤 개인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데 대체하려면 버겁기도 하다. 대체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서 소방관을 더 많이 모집을 해야 되는데 인원이 모자라는 게 아쉽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보면 “소방관들 장갑을 안 내줘요.” 이렇게 하는 분들 있는데 그 언론보도 이후에 많이 좋아졌다. 장비도 많이 지원이 되고 있고 노후 소방장비가 내용 연수가 있는데 노후되다 보니까 못 구할 수 있는 상황도 있었다. 충원도 해주고 있는 시점이긴 한데 그래도 예전보다는 좋아졌지만 더 잘해줬으면 좋겠다.

- 장난전화에 대한 대처,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을 해주신다면?
장난전화를 하면 경찰관들이 형사 처벌 한다고 옛날에 뉴스에 나오기도 한다. 만우절에 거짓말 많이 하는데 현재 장난전화는 많이 줄었다. 휴대폰이 없었을 시절에 대신에 삐삐, 공중전화도 많았다. 그리고 그 때는 집에서 전화를 119 눌러도 전화번호가 안 떴었는데 지금은 이제 일반전화도 상대편 번호가 다 떠서 장난이 줄어들었다. 근무하다 보면 애들이 많이 신고를 하기도 하고 만취한 상태에서 장난치는 사람들 있다. 이럴때마다 인정상 그 때는 처벌을 많이 안 했지만 그렇게 장난전화를 하면 소방서 상황실에서 받을 수 있는 전화개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누가 다쳐서 정말 응급상황에서 119를 불러야 하는데 통화중이면 정작 필요한 사람한테는 수혜가 안 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 이 직업을 희망하는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세월이 빨리 바뀐다. 글로벌세계, 세계화. 인공지능으로 약 2045년도에 현재 직업이 47%가 없어진다고 한다. 컴퓨터의 인공지능으로 인해 행정직 공무원들의 일이 줄어들을 것이다. 하지만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로봇으로 불을 끄는 거는 한계가 있고 불이 나서 건물이 붕괴가 되면 사람 인력이 필요 할 수 밖에 없다. 폭삭 무너진 건물 안의 불을 기계가 끌 순 없다. 앞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방안은 직업군이 바뀌는 것이다. 지금은 공무원이 최고라고 하지만 컴퓨터나 기계들이 하는 시대가 오기 마련이다. 그럼 공무원 인력을 감축하고 청년들이 직장을 잡기 힘들어진다. 근데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세상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소방관들이 없으면 안 되는 게 많다. 그래서 이 직업이 미래성으로는 괜찮은 것 같다.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을 해주세요
안전, 예방. 예를 들면 소방서에 응급처치 교육, 소화시설 작동법 같은 안전 교육을 해준다. 근데 내 일 아니니까 응급처치교육이구나 하고 무심코 지나간다. 만약 그런 일이 없다고 볼 순 없다. 그러니 사소한 거에 대해서 안전이 중요하고, 사소한 거라도 “괜찮겠지” 라는 생각은 하지 말고 안전 쪽으로 의식변화가 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보은고 임수아, 김민선, 김수한 학생이 고근수 소방관을 만나 인터뷰를 마치고 고근수 소방관 함께.
취재후기
보은소방서는 항상 멀리서 보기만 했었지 실제로 들어가는 건 처음이라 많이 떨렸다. 인터뷰는 4시부터였지만 사고가 나서 늦으신다는 말에 다른 소방관 분과 같이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고근수 소방관께서 들어오셨는데 우리를 즐겁게 맞이해 주셨다. 들어 오시자마자 무슨 사고가 났는지 설명해주셨는데 그런 사고를 많이 보셔서 조금 힘드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인터뷰를 하기 전에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 집이 어디냐 등등 많은 걸 물어보셔서 왠지 우리가 인터뷰를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뭔가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성격이 쾌활하시고 재밌으셔서 인터뷰하는 내내 마음이 편하고 즐거웠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할머니들께 자신에게 자식보다 괜찮다는 말을 들었던 걸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데 그 분 표정에서 보람차고 행복한 게 느껴져서 나도 기분이 좋았고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계시는 분이었다.
인터뷰/보은고 임수아, 김민선, 김수한
정리/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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