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에 두보의 시에 맞춰 시를 짓다[1] : 夜坐次杜詩韻 / 유항 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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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두보의 시에 맞춰 시를 짓다[1] : 夜坐次杜詩韻 / 유항 한수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6.08.2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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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3】
나이 들면 밤잠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초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이면 일찍 일어나 지난날을 회상하거나 글을 읽거나 옛 시문을 떠 올리기도 한다. 시인도 예외는 아니ㅏ었던 모양이다. 잠도 오지 않는 깊은 밤에 두보의 시에 취해서 그의 시에 운자를 차운한다. 율시이니 당연히 2구?4구?6구?8구에 있는 운자는 당연했을 것이니… 자기가 하고자 하는 대로 일은 되지 않고 몸은 병들어 있음을 한탄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오늘도 뉘엿뉘엿 날은 또 저물어가고
무심한 백년 세월 참으로 슬프구나
뜻대로 일은 되지도 않고 병들고 늙었구려.
此日亦云暮 百年盡可悲
차일역운모 백년진가비
心爲形所役 老與病相隨
심위형소역 노여병상수

밤중에 두보의 시에 맞춰 시를 짓다(夜坐次杜詩韻1)로 제목을 붙여보는 오언율의 전구다. 작자는 유항(柳巷) 한수(韓修:1333~1384)다. 1347년(충목왕 3) 15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했다. 충정왕 때 정방(政房)의 필도치[필도역 : 원나라 벼술명]에 임명되었는데, 강화(江華)로 쫓겨나는 왕을 수종(隨從)하여 사람들에게 그 절개를 높이 평가받았다고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오늘도 또 날이 저물어가고, 무심한 백년 세월 참으로 슬프구려. 마음먹은 대로 일은 되지 않고, 몸이 늙어 병마저 따라서 생겼다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의 제목을 직역하면 [밤에 두보의 운에 맞춰 시짓다]로 번역된다.
약관의 나이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던 시인이고 보면 남보다 먼저 세상의 영화를 누렸다. 인간에서 주어진 운명이 있다면 가야할 길은 평생선이다. 생명이 유한이라면 벼슬길도 영원할 수는 없는 법임을 가르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처럼 승승장구가 아닌 인간의 한계가 있다면 시인은 나이 연만하여 한거의 생활에 몰입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날이 저물다와 무심한 백년 세월이 슬프다, 마음먹은 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와 몸이 늙어 병들다는 내용까지고 상관관계에 있음을 보인다. 모든 것이 젊은 나이의 자기가 아님을 예고하고 있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연기 냄새 식으니 향불은 꺼지고, 창문이 환해지면서 둥근 달이 떠오르네. 마음속 답답하나 함께 할 이 없으니, 애오라지, 옛 사람의 시에 응대하며 답이나 하자] 라고 했다. 옛 사람의 시에 응대하며 시나 읊으며 살고 싶다고 했다.
【한자와 어구】
此日: 오늘. 亦: 또 다시. 云暮: 날이 저물다. 百年: 백년. 흘러간 세월이 무심함. 盡可悲: 모두 참으로 슬프다.
心爲: 마음대로 하다. 形所役: 부리는 바가 되지 못함(부정의 뜻이 있음). 老與病: 늙고 또한 병들다. [與]는 ~과. 相隨: 따르다. 곧 [老]와 [病]이 따르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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