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일과가 아침저녁으로 마당의 잔디와 화초 그리고 텃밭에 물주는 것이 일이다. 더위도 더위지만 한 달 째 비가 오지 않아 사람마저 늘어졌는데 바싹 타버린 땅은 물을 뿌려 주어도 금방 말라버리니 하루도 거를 수가 없다. 잎이 조금만 시들어도 애가 타 하는 아내의 성화도 성화지만 나 역시 목말라 하는 그들을 보면 딱한 생각이 들어 그냥 있을 수가 없다. 하루 빨리 비가 내려야 될 터인데 아직도 비 소식은 묘연하니 낭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며칠 전 맏이가 전화를 했다. 십 여일 전쯤에 집에 와서는 지난번처럼 가족 휴가 여행을 가자고 한다. 지난번이란 지난 설 때 전라도 무주로 2박3일간 가족 나들이를 한 적이 있는데 그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맏이와 막내는 교직에 있어 방학 때이니 시간 내는데 별 문제가 없고 둘째도 시간 맞추어 휴가를 내면 된다고 하며 제 동생들과도 상의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어도 이미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을 대로 하라 하였더니 이 더위에 집 떠나면 고생이지 왜 돈 없애며 고생하러 가느냐고 하면서 나는 안 갈 테니 너희들 끼리 다녀오라고 아내가 제동을 건다. 원래 어디 나다니기를 좋아 하지 않는 사람인데다 몸도 성치 않으니 그러기도 하지만 사실 나이 먹은 사람이야 집 보다 편한 곳이 없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하여도 뜻을 굽히지 않으니 그러면 제 동생들과 다시 상의해서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는데 그래서 전화를 한 것이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제 어머니를 배려해서 주말에 청주에 있는 둘째 집에 모여 함께 영화관으로 피서 가기로 했으니 아침 10시 까지 오란다. 그래서 그 날 모두가 모이게 되었는데 우선 가까운 세종 시 에 있는 교과서 박물관을 둘러보고는 냉면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영화관으로 가서 구 한 말 황녀의 비운의 삶을 그린 덕혜옹주를 관람하는 동안은 영화관의 선선한 냉방과 화면에 몰입 할 수 있어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영화관을 나서니 긴 여름날도 기우러 저녁 식사 때가 되었으니 아내의 기호대로 쭈꾸미 볶음을 먹는 것으로 우리 가족 금년 여름휴가를 마무리 하게 되었다. 아이들 말로는 제 어머니 덕에 돈 안 쓰고 알찬 휴가여서 좋았다고는 해도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언젠가 잡지에서 본 기억으로 서구의 젊은이들은 휴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 년을 일하고 그 돈으로 여행하며 휴가를 즐긴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언제 부터인가 우리나라 사람들도 특히 여름철엔 휴가를 집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 같다. 휴가철이나 연휴 때에는 도로가 몸살을 앓고 공항이 붐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만큼 우리나라도 잘 사는 것이라 실감도 되지만 어렵던 옛날도 되살아나게 되어 격세지감도 새롭다. 그때 농촌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을 전후하여 백중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일꾼들에게는 그 날이 일 년 중 유일한 공식 휴가 날이다. 이 날 주인은 새로 지은 옷 한 벌과 용돈을 머슴에게 주는데 대개는 그 돈을 쓰지 않고 모아 두기도 하지만 어째든 그 날 만은 돈을 쓰던 안 쓰던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날이다.
지난 주 말복 다음날 우리 마을 에서는 반상회 겸 백중 잔치를 하였다. 우리 마을 백중은 다른 지역과 달리 음 칠월 16일인데 이 날로 정한 까닭은 옛날엔 이 날 우리 마을에 장이 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중 잔치라야 마을 사람들이 함께 국밥으로 점심 나누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서로가 옛날을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이 더 좋았던 것 같다.
휴가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군대에서 받는 휴가가 제일 좋을 것이다. 춘천에서 군 생활을 한 나는 지금은 세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그 때 집에 오려면 아침 일찍 군용 열차를 타면 용산 역에서 갈아타고 조치원에서 내려 겨우 청주에 오면 막차도 떠난 뒤여서 자고 다음 날에야 집에 올 수 있었는데 청주에서 잘 때면 걸어서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때는 기차나 버스가 왜 그렇게 느리다고 생각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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