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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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6.08.2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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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턱이 떨어지는 처서라고는 해도 땡볕 더위는 여전하다. 금년 여름은 130여년만의 더위라 하니 나는 물론 지금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처음 겪는 여름이 되는 셈이다. 어제는 어떤 일로 청주엘 갔었는데 무더운 날씨도 날씨이지만 달궈진 도로의 복사열과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배기 열로 인해 가중된 열기는 정말 참기 어려울 지경이어서 이에 비하면 시골에 사는 나는 여름내 선풍기를 붙잡고 있기는 했어도 에어컨은 거의 켜지 않고 지낼 수 있었으니 그래도 견딜 만 했던 것 같다.
나는 요즘 일과가 아침저녁으로 마당의 잔디와 화초 그리고 텃밭에 물주는 것이 일이다. 더위도 더위지만 한 달 째 비가 오지 않아 사람마저 늘어졌는데 바싹 타버린 땅은 물을 뿌려 주어도 금방 말라버리니 하루도 거를 수가 없다. 잎이 조금만 시들어도 애가 타 하는 아내의 성화도 성화지만 나 역시 목말라 하는 그들을 보면 딱한 생각이 들어 그냥 있을 수가 없다. 하루 빨리 비가 내려야 될 터인데 아직도 비 소식은 묘연하니 낭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며칠 전 맏이가 전화를 했다. 십 여일 전쯤에 집에 와서는 지난번처럼 가족 휴가 여행을 가자고 한다. 지난번이란 지난 설 때 전라도 무주로 2박3일간 가족 나들이를 한 적이 있는데 그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맏이와 막내는 교직에 있어 방학 때이니 시간 내는데 별 문제가 없고 둘째도 시간 맞추어 휴가를 내면 된다고 하며 제 동생들과도 상의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어도 이미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을 대로 하라 하였더니 이 더위에 집 떠나면 고생이지 왜 돈 없애며 고생하러 가느냐고 하면서 나는 안 갈 테니 너희들 끼리 다녀오라고 아내가 제동을 건다. 원래 어디 나다니기를 좋아 하지 않는 사람인데다 몸도 성치 않으니 그러기도 하지만 사실 나이 먹은 사람이야 집 보다 편한 곳이 없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하여도 뜻을 굽히지 않으니 그러면 제 동생들과 다시 상의해서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는데 그래서 전화를 한 것이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제 어머니를 배려해서 주말에 청주에 있는 둘째 집에 모여 함께 영화관으로 피서 가기로 했으니 아침 10시 까지 오란다. 그래서 그 날 모두가 모이게 되었는데 우선 가까운 세종 시 에 있는 교과서 박물관을 둘러보고는 냉면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영화관으로 가서 구 한 말 황녀의 비운의 삶을 그린 덕혜옹주를 관람하는 동안은 영화관의 선선한 냉방과 화면에 몰입 할 수 있어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영화관을 나서니 긴 여름날도 기우러 저녁 식사 때가 되었으니 아내의 기호대로 쭈꾸미 볶음을 먹는 것으로 우리 가족 금년 여름휴가를 마무리 하게 되었다. 아이들 말로는 제 어머니 덕에 돈 안 쓰고 알찬 휴가여서 좋았다고는 해도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언젠가 잡지에서 본 기억으로 서구의 젊은이들은 휴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 년을 일하고 그 돈으로 여행하며 휴가를 즐긴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언제 부터인가 우리나라 사람들도 특히 여름철엔 휴가를 집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 같다. 휴가철이나 연휴 때에는 도로가 몸살을 앓고 공항이 붐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만큼 우리나라도 잘 사는 것이라 실감도 되지만 어렵던 옛날도 되살아나게 되어 격세지감도 새롭다. 그때 농촌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을 전후하여 백중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일꾼들에게는 그 날이 일 년 중 유일한 공식 휴가 날이다. 이 날 주인은 새로 지은 옷 한 벌과 용돈을 머슴에게 주는데 대개는 그 돈을 쓰지 않고 모아 두기도 하지만 어째든 그 날 만은 돈을 쓰던 안 쓰던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날이다.
지난 주 말복 다음날 우리 마을 에서는 반상회 겸 백중 잔치를 하였다. 우리 마을 백중은 다른 지역과 달리 음 칠월 16일인데 이 날로 정한 까닭은 옛날엔 이 날 우리 마을에 장이 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중 잔치라야 마을 사람들이 함께 국밥으로 점심 나누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서로가 옛날을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이 더 좋았던 것 같다.
휴가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군대에서 받는 휴가가 제일 좋을 것이다. 춘천에서 군 생활을 한 나는 지금은 세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그 때 집에 오려면 아침 일찍 군용 열차를 타면 용산 역에서 갈아타고 조치원에서 내려 겨우 청주에 오면 막차도 떠난 뒤여서 자고 다음 날에야 집에 올 수 있었는데 청주에서 잘 때면 걸어서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때는 기차나 버스가 왜 그렇게 느리다고 생각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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