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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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침묵
  • 김종례 시인
  • 승인 2016.07.1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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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장대비가 내린 후 청명한 아침이다. 오랜만에 해갈의 소식과 함께 온 대지가 원기를 회복하면서 마음까지도 생기로운 아침이다. 시들시들하던 천리향 꽃잎들이 생수를 마신 듯 화들짝 한들거리고, 물과 햇볕을 흠뻑 머금은 나뭇잎들이 살랑거리며 춤을 춘다. 낮달맞이, 사피니아, 제라늄 붉은 꽃잎들도 내 마음을 잡으려고 해맑게 웃으며 아양을 떤다. 이다지도 싱그러운 여름의 아침은 이 세상 어느 자유로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휠링의 시간이다. 거실로 들어와 티브를 켜니 밤사이 일어난 각종 범죄들을 전하는 아나운서 목소리가 마음을 다시 미궁으로 몰고 간다. 그 중에서도 정녕 이해하기 어려운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상황들을 세세히 설명하고 있다. 얼마 전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늦은 밤에 병원 갈일이 생겼는데 지인의 차 앞에 다른 차가 가로막혀 있어서 전화를 했더니, 자고 있는데 깨웠다고 불법주차 한 자가 오히려 화를 내더라고 한다. 남의 방을 노크도 없이 연 사람이 방 안에서 깜짝 놀란다고 ‘그까짓 일로 화를 내요?’라며 오히려 나무라던 태도도 정녕 믿기지 않으나 경험이다. 채무자가 찾아온 채권자를 죽이는 세상에 우리 모두가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 옛말에도 적반하장의 실례를 설명하는 속담도 무수히 많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던지, 물속에 빠진 자를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하던 얘기나, 굴러온 돌멩이가 박인 돌을 빼내려는 염체스러운 일,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고 있다는 말들이 모두 명중명언이다. 더욱 우려가 되는 것은 이런 적반하장의 무례함이 보는 대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 무방비책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이러한 비리를 알면서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시정하려는 의지가 대중에게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여도 눈을 감고 들려도 귀를 막는 양심이라는 놈이 실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가 말한 침묵의 합창 단원수가 점점 증대하고 있는 것이다. 악이 승리할 수 있도록 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 방관의 사태속에 우리 모두 잠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자기 실속만 차림으로 인해서 파생되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나, 흔들리는 걸 알면서도 바로 세우려는 용기가 파렴치들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나만의 울타리 안에 갇혀 사는 생활문화가 그 수위를 더해가고, 작은 불법행위 하나에도 저항하는 양심의 수호자가 혼돈의 온실 속에서 자라고 있는 양심의 회피자를 억누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내 놓아라’ 오리를 함께 가 달라고 애원하거든 십리길을 동행하라‘는 말씀도 이런 경우에 대비하라는 귀한 뜻이 아닐까 싶다. 삼강오륜에 나오는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부강(夫爲婦綱), 부위자강(父爲子綱), 그리고 군신유의(君臣有義), 부자유친(父子有親),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등 윤리 도덕의 기본이 되는 도리를 구태의연한 옛이야기라고 치부한다면, 그까짓 사소한 일이라고 방관하며 정직이나 양심과 타협하려 한다면, 이 땅에 평화와 안정과 번영의 뿌리는 영영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적당한 제약이 없는 무제한의 자유로움은 오히려 인간의 정신을 혼미하게 이끌기 때문이다. 혜성 저편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어가는 듯한 인간애의 불씨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존하고, 소중히 지켜내려는 끈기가 실종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불의에 대처하는 용단과 액션을 우리 모두 발휘하여 다음 세대의 안녕과 질서를 기원해야 할 시점이다.
초딩 아이들처럼 연둣빛 살을 비벼대며 자라나는 벼 포기들이 며칠 사이에 하늘을 향해 검푸른 진녹빛을 뿜어대며 청소년들의 기상으로 서 있다. 아마도 며칠간은 여름비가 계속될 것 같다. 돌 틈으로 새는 물길이라고 얼른 막지 않는다면, 온 둑방이 무너지고 온 들판은 물바다가 될 것이다. 작은 틈에서 비롯되는 큰 붕괴를 막지 못하여 파생되는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한 이치이다. 오염된 쓰레기나 먼지들이 장맛비에 씻겨서 후련하게 떠내려가듯이, 우리들의 오염된 양심도 치유되고 회복되어 생기로운 우리 모두의 여정길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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