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내린 눈(野雪 또는 夜雪) / 임연 이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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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내린 눈(野雪 또는 夜雪) / 임연 이양연
  • 보은신문
  • 승인 2016.07.1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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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4】
백범은 1948년 4월 19일 38선을 넘어 평양에서 열린 전조선 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와 남북요인회담,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의 4자회담에 참석하고, 5월 5일 서울에 돌아왔다. 도착성명에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통일조국을 재건하기 위하여 남조선 단정을 반대하며 미소양군의 철퇴를 강력히 요구하는데 의견이 일치하였음을 밝혔다. 백범은 38선을 넘으면서 시인에 지은 시구를 인용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野雪(야설) / 임연 이양연
들판에 눈 쌓인 길 처음 뚫고 갈 때에는
아무렇게 이리저리 갈 일은 아닐지니
뒤따른 이정표되리라, 내가 걸어 남긴 자취.
穿雪野中去 不須胡亂行
천설야중거 부수호란행
今朝我行跡 遂爲後人程
금조아행적 수위후인정

들판에 내린 눈(野雪 혹은 夜雪)로 번역되는 오언절구다. 작자는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1771~1853)으로 조선 후기 문신이다. 호조참판을 지냈고 성리학에 정통했으며 시에도 뛰어나, 사대부로서 농민의 참상을 아파하는 민요시를 지었다. 오랫동안 ‘서산대사’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던 이 작품이 이제 주인을 새롭게 찾았으니 다행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들판에 눈 쌓인 길 뚫고 갈 때는,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갈 일 아니네. 오늘 아침 내가 가며 남긴 자취는, 뒤 따라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시상이다.
임연의 시문을 기리는 찬시 한 수를 음영한다. [임이 주신 야설 한 수 어둔 밤길 밝히면서, 백범의 평생 금언 가슴 속에 심었으니. 해쳐갈 민족의 등불 잔잔하게 타옵니다]. 임영은 문장이 뛰어났고 성리학에 정통했다.
늙어서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문장이 ‘전아간고’하여 후학들이 다투어 암송했다. 시에도 뛰어나 사대부로서 농민의 참상을 아파하는 민요시를 지었다.
시인은 눈이 쌓이거나 숲이 우거진 곳을 갈 때는 아무렇게나 갈 일이 아니라고 시상을 일으킨다. 그러면서 오늘 아침 내가 가며 남긴 자취 뒤에 따른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나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다.
화자는 밤중에 내린 눈을 밟고 가는 이 길이지만, 어찌 함부로 밟고 지날 수가 있겠는가. 내가 한 이 일이 뒤 따라오는 사람들의 발자취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했으니 그 본이 되어야 하겠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뒷사람이 따르는 자취가 될 것이니 조심해야 되지 않겠는가.
【한자와 어구】
穿雪: 눈을 뚫고 가다. 野中: 들판 가운데. 去: 가다. 不須: 모름지기 ~해서는 안된다. 胡亂行 : 아무렇게나 다니다. 함부로 다니다.
今朝: 오늘 아침. 我行跡: 내가 가는 길. 내가 행하는 자취. 遂爲: 마침내 ~이 되다. 後人: 뒤따르는 사람. 程: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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