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단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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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단의 사랑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6.06.3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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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사는 동안에 서로 짝을 이루어 자기들과 닮은 유전자를 남기고 일생을 마친다. 그러자니 짝을 만나야 하는데 만난 장소와 만나게 된 과정은 각양각색이다. 그리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정표시를 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라고 다른 점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가 스페인 발렌시아에 있는 “싼 후안 델 오스피탈” 유적지 발굴단에서 짧은 기간이나마 참여 발굴할 때의 이야기다.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유구가 확인된 그 바로 옆에는 나폴레옹전쟁 당시에 새로 조성된 공동묘지가 있었다. 내가 그곳 유골 발굴 작업에 참여하게된 것은 행운이었다. 완전히 뼈만 고스란히 남아 누워있는 유골을 그 형체대로 발굴해 내기 위해서 작은 스푼 같은 장구로 주위의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또 붓으로 유골 주위의 흙을 떨어내는 정교한 작업이었다.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난 유골은 흙과 동화되어 특유의 미세한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붓으로 유골 주위 흙을 조심스럽게 떨어내는데 뼈에 묻어있는 흙을 조금이라도 더 깨끗이 떨어내기 위해 붓에 약간만 힘을 가해도 단단하게 보이던 뼈가 마른 흙처럼 바스러지면서 흩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옆에서 보던 발굴단원 한 사람이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위층에서 유골을 수습하고 나면 그 아래층에 또다른 유골층이 나타나 몇층을 이루고 있었다. 후일담이지만 이 좁은 구역에서 약 800구의 유골이 나왔다. 나폴레옹전쟁 당시에 여러 곳에 있던 무덤들을 파헤쳐서 귀금속들을 빼내가고 난후 유골들을 이곳에 합장한 곳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전쟁 도굴의 현장이었다.
그런데 그곳 발굴현장의 분위기는 참으로 묘했다. 현장 담 넘어로 들리는 위협적인 숫사자의 포효가 천지를 진동하는 것 같았다. 그 옆집에 사자를 사육하는 우리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들을 했으나 그 뿐이었다. 뼈만 남아 누워있는 시신들과 사자의 포효는 묘한 대조를 이루어 약간 으시시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보니 옆에 있는 남녀 한조가 유달리 다정하게 붙어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업하다 말고 둘이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또 같이 쪽쪽거리기도 하는 모습이 신경 쓰였다. 더구나 그곳은 뭇 시신들이 있는 공동묘지가 아닌가. 그들의 애정표시는 시신의 유골 앞에서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대학원생인 그들에게는 그곳이 작업장일 뿐 공동묘지라고 해서 특별한 의미는 없는 것 같았다. 잠간 레프레스코 타임에 발굴단장인 발렌시아 문화재연구소장에게 저들이 어떤 사이냐고 물어보았다. 단장은 이미 둘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옆에 있는 로마 원형극장 지하작업장에서 둘이 작업하다가 저렇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더욱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들에게 참 보기 좋다면서 사진을 한 장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쾌히 응하면서 노출되어 있는 유골 바로 위에서 앉은채로 손잡고 포즈를 취했다. 앞으로 둘이 결혼할 거냐고 물어보았다. “지금은 이렇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여학생이 말했다. 남학생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의 사랑을 싹틔우게 한 지하작업장이 궁금해서 혼자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보았다. 큰 방 하나보다 조금 더 큰 지하작업장은 로마시대 원형극장의 유구로서 세월이 지나면서 지하 깊이 묻혀 있었다. 그곳은 그 두 사람만의 밀회장소로는 최적격 이었다. 장소가 그들의 사랑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어느 곳이나 사랑은 약간 어둑하고 조용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약 1년 후, 나는 귀국하였고 그 후에는 현실적인 바쁜 일정들 때문에 연락이 모두 끊어졌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유적발굴단에 참여한 일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두 사람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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