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이즘’과 ‘흙수저’
상태바
‘만델라이즘’과 ‘흙수저’
  • 최동철
  • 승인 2016.06.09 1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48>
오십대 후반 세대의 남자들은 웬만하면 앎 직한 옛 세계헤비급권투선수 중에 ‘무함마드 알리’가 있다. ‘전설의 복서’라 불렸던 그가 일흔네 살의 일기로 며칠 전 숨을 거뒀다. 은퇴 3년만인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30여년간 투병해왔다고 한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그가 활동했던 60~70년대 세계헤비급권투계는 흑인 복서들 세상이었다. 소니 리스턴, 조지 포먼, 조 프레이저가 챔피언 벨트를 놓고 주먹의 세기를 겨뤘다. 백인 복서를 상대할 때는 인종차별에 항의하듯 보다 센 주먹을 날렸다.
알리가 세계 헤비급 통합챔피언이었던 당대 최고의 무시무시한 주먹 리스턴을 티케이오(TKO)로 이기고 챔피언에 등극했을 때 그의 이름은 ‘캐시어스 클레이’였다. 당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의 영웅이더라도 흑인이면 식당에서 문전박대를 당해야 했던 시대였다.
흑인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컬어지는 이른바 ‘흙수저’나 진배없었다. 그럼에도 충직하게 백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착한 흑인으로 살든가, 불평을 하며 질서를 위협하는 검둥이로 낙인찍히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했다.
헤비급 타이틀을 25차례나 방어한 1930년대 전설적인 복서 조 루이스도 그래야 했다. 백인들의 거부감을 피하기 위해 백인 복서를 힘겹게 때려눕히고도 기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백인 여성 팬들의 기념사진 촬영 요구조차 사양했다.
37회 연승의 신화를 쌓았던 80년대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은 쓸 돈을 벌기위해서가 아니라 돈이 없으면 도어맨(현관안내인)으로서 백인들에게 ‘옛써 옛써(Yes, sir)'하며 평생 굽실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싸웠다고 술회했다.
특히 백인과 싸울 때는 자기 할아버지가 백인들에 의해 짐승처럼 투망에 걸려 잡혀온 사실을 상기했다. 그러면 괴력이 절로 솟아났다. 흑인이 별나게 주먹이 센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흙수저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벗어나려는 또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한 맺힌 응어리였다.
캐시어스의 성, 클레이(Clay)는 진흙이라는 의미다. ‘흙수저’와 같다. 미국에 끌려왔던 선조들의 노예냄새 물씬 풍기는 성을 그는 그래서 버렸다. 성서에 손 얹고 대통령 선서를 하는 기독교의 나라에서 인종 차별하는데 반발하여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무함마드 알리’가 됐다.
베트남 전쟁당시 징집된 알리는 군대에 가기위해 신병집결지에 도착했다. 백인 징집관은 무함마드 알리 대신 캐시어스 클레이를 불렀다. 그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베트콩은 우리를 검둥이라 욕하지 않는다. 그들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고 외쳤다.
이 같은 흑인들의 한 서린 응어리를 ‘만델라이즘’이라고 한다. 소수 백인들이 다수 흑인을 노예화한 데 항거했다가 27년간의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흑인 인권지도자 넬슨 만델라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역임했다. 흙수저의 교훈이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