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욱하게 하는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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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욱하게 하는 ‘갑질’
  • 최동철
  • 승인 2016.05.2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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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모 씨는 보은읍내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노인이다. 강건한 신체와 부지런함, 강한 생활력을 타고난 덕에 돈이 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하며 열심히 산다. 그런 그가 얼마 전 경비원 일을 그만두고 공공근로인 ‘산불감시원’이 됐다.

그가 말한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지난 해 초에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경비원 일을 하게 됐다. 일감이 일정치 않은 일용 노무자에 비해 수입이 정기적이고 힘도 덜 들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에게 봉사차원의 일을 도와준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허나 신분이 뒤바뀐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주민이라는 ‘갑’의 입장에서 제복 입은 고용된 경비원이라는 ‘을’의 신세가 됐다.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처럼 하루아침에 온갖 무시와 천대를 견뎌내야 하는 거지꼴이 된 듯 했다.

특히 동년배인 주민 한명이 뻔뻔스럽게도 못된 갑질을 일삼았다. ‘심청전’의 뺑덕어미 심술은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그가 출입할 때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 얼른 쫓아 나와 거수경례를 해야 했다.

툭하면 경비원실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며 뭐하고 있나 감시하곤 했다. 휴식시간 의자에 앉아 발을 뻗고 잠시 쉴라치면 어느 새 보고선 ‘근무태만에 건방지다’며 흰소리를 해댔다.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참다못한 어느 날 동네 가게에서 술 몇 잔에 얼굴이 벌개 진 모 씨는 ‘갑질’을 따지고 들었다. ‘야 이 개xx야! 나이도 같고 같은 아파트 주민인데 그렇게 대할 수 있느냐’며 들이 박았다. 산불감시원을 하는 요즘 그는 ‘뱃속 편해 정말 좋다’고 자족하고 있다.

‘갑질’이란 갑을관계에서의 ‘갑’에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뜻한다. 고로 약육강식이 통용된다는 대처에서나 있는 일쯤으로 알았다. 헌데 이런 일이 보은지역에도 있다는 것이 놀랍다.

사실 갑질이란 게 무릎 꿇린 땅콩회항이나 백화점 점원 사건같이 극단적인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자신이 잘난 줄 알거나 조직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혼동하여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도 갑질이다.

을이라면 나이 많은 어른에게도 반말 짓거리를 해대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며 하인 부리듯 윽박지르는 것도 갑질이다. ‘갑질(골칫덩이)이론(Assholes, A Theory)’을 발표한 미국의 철학박사 ‘아론 제임스’가 ‘그들은 왜 뻔뻔한가’란 책을 썼다.

상식 밖 행동을 한 그들에게 ‘항문’을 뜻하는 애스홀이라는 단어를 썼다. 부도덕한 특권 의식과 독선으로 욱하게 하는 그들은 절대 그 이유를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교화방법이 전무해 어쩔 수 없는 삶의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냈다. 참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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