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고 싶은 한 인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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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고 싶은 한 인생관
  • 최동철
  • 승인 2016.05.1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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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1980년 5월17일은 전두환·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가 시국 수습이라는 명목아래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던 날이다. 곧 정당 및 정치활동 금지, 국회 폐쇄, 국보위 설치 등의 조치가 뒤따랐다. 영장없이 학생·정치인·재야인사 2699명이 구금됐다. ‘5·17 쿠데타’라고도 한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2007년 5월17일, 한 인생이 이승을 하직했다. 향년 예순아홉 살의 권정생이다. ‘강아지 똥’ ‘몽실언니’ 등 동화작가이자, 시인이었다. 제 나라 없던 일제강점기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광복 후, 경북 안동 한 시골교회 종지기로 살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다섯 살 때쯤 누나들의 예수이야기를 듣고 환상 속에서 십자가에 박힌 예수의 모습을 본 뒤, 평생 예수를 믿고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생동안 폐결핵을 앓으면서도 자신에게는 돈을 쓰지 않았다. 옷 몇 벌만으로 마치 노숙자처럼 평생을 청빈하게 살았다.

어느 정도였는지 알려진 바는 다음과 같다. 마을 주민들은 권정생 임종 후, 세 번 깜짝 놀랐다고 한다. 사고무친,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으로 생각했는데 전국에서 수많은 조문객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놀랬다.

병으로 고생하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불쌍한 노인인 줄 알았는데 연간 수 천만 원 이상의 인세수입이 있는 분이란 걸 알고 놀랐다. 그렇게 모인 십억이 넘는 재산과 앞으로 생길 인세 수입 모두를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조목조목 유언장에 밝혀 놓은 걸 보고 또 놀랐다.

그의 유서에는 ‘인세는 어린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굶주린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여력이 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서도 써 달라. 남북한이 서로 미워하거나 싸우지 말고 통일을 이뤄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권정생은 살아생전 입버릇처럼 ‘내 죽을 때 300만원만 있으면 된다’고 되뇌였다고 한다. 그 돈으로 화장한 뒤, 오두막 근처에 뿌리고 집도 없애 자연 상태로 돌리고 기념관도 짓지 말라고 했다.

그의 시 ‘밭 한뙈기’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모른다./ 밭 한뙈기/ 논 한뙈기/ 그걸 모두/ '내'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사람의/ '내'것은 없다.// 하느님도/ '내'거라고 하지 않으신다./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되고//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대부분 내 것만을 추구하며 오늘을 산다. 자신과 가족과 우리의 영달뿐이다. 오로지 자신의 남은 인생만을 걱정하며 죽을 때까지도 배를 채우려 할 것이다. 부끄럽다. 부끄럽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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