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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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에 부쳐
  • 최동철
  • 승인 2015.05.1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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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있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내일은 ‘스승의 날’이다. 그러나 교단을 지키고 있는 교사들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어떤 교사는 말한다. 촌지 운운하며 서울, 경기도의 몇몇 학교에 국한된 일을 마치 모든 교단에서 일어나는 일인 양 치부하는 것은 이 나라 교육을 어렵게 하는 것이라고 한탄한다.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1965년부터 ‘스승의 날’로 정했다. 그 뒤 1973년 사은행사가 취지를 벗어나 금품이 수수되는 폐단이 생겼다며 서정쇄신 차원에서 폐지됐다가 1982년 부활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스승을 공경하는 풍토조성이 필요하다는 게 부활의 이유였다.

제자가 스승을 얼 만큼 공경해야 하는지는 정문입설(程門立雪)의 고사성어에서 알 수 있다. 북송 때 유초와 양시가 대유학자인 정이천(程伊川)에게 가르침을 받기위해 찾아간다. 마침 이천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두 사람은 문 앞에 서서 마냥 기다린다. 이윽고 이천이 눈을 떴을 때는 밖에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다.

그 옛날 왕정시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말이 있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한 몸과 같으니 똑같이 존경해야 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역사책인 진어(晉語)에 나오는 구절로서 ‘백성들은 임금, 스승, 아버지를 근본으로 태어난다. 삶에 있어서는 동류(同類)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결 같이 목숨 바쳐 섬겨야 한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사제지간이다. 명문귀족출신으로 정치에 뜻을 두었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만난 건 스물한 살 때다. 이후 8년간 소크라테스를 깍듯이 공경하며 스승으로 모시면서 인격과 사상의 깊은 영향을 내리 받는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독배를 들고 죽자 충격을 받아 정치가의 뜻을 버리고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철학자가 된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중심적 지도자였던 베드로도 어부였을 때 스승 예수를 만난다. 갈릴리 호수에서 동생과 함께 물고기를 잡던 베드로가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는 예수의 가르침에 성큼 제자가 된다. 이처럼 사제 간의 만남은 인생길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일개 정치가로서 생을 마쳤을 것이다. 베드로 역시 물고기 잡는 어부로 여생을 보냈을 것이다.

스승이란 부모와 같다. 스승은 제자가 똑같이 따라 행동하고 배우는 존재이다. 고로 스승은 항상 제자가 공경할 만큼의 인격과 실력을 갖추어 제자를 이끌어야 한다. 교육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들을 한다. 그러나 스승의 날 되돌아보면 교육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교단의 스승을 존경하고 스승은 제자를 사랑해야 죽었던 교육이 되살아날 것이 분명하다.

교육을 제대로 행하려면 제일 먼저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정립해야 한다. 그러자면 어버이 마음을 가진 참스승들이 이 세상에 많아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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