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과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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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과 보은
  • 박진수 기자
  • 승인 2015.04.0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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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동학농민혁명일 제정을 위한 추진 현황보고회를 통해 그동안 수차례에 대한 논의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사 전문단으로 구성된 학계의 의견이 게진되고 전국동학농민혁명 관련 민간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주화약일, 즉 조선의 정부가 동학군의 폐정개혁안 마련의 토대가 되었던 날로 최종 결정되는 분위기였다.
이날 회의 결과를 토대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국가 기념일 제정을 위한 정부건의등 다양한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을 추진할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황토현전투 대승일을 주장해온 정읍시를 비롯한 정읍시 의회등 관련 민간단체의 공식적인 반대표명에 나서는가 하면 전주화약일에 대한 역사적 조명을 거론하면서 여론 확산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보은군 역시 동학농민혁명의 전사인 1893년 3월 보은집회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마지막 전투지인 북실전투에 대한 역사적 사건의 무대라는 점에서 지역성을 고려한 일방적인 주장보다는 옥천 청산에 주둔해 있던 해월 최시형을 중심으로 북접군과 남접 전봉준 장군과의 합류한 2차봉기의 논산집결일을 주장해 왔다.
비록 최종 결과에서는 2순위로 탈락되었지만 조선 정부가 동학농민군의 주장을 받아들인 폐정개혁안이 마련되어 전라도를 중심으로 집강소를 설치하면서 지방자치의 성격을 지닌 전주화약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분위기에 편승할 수 밖에 없었다. 아쉬움은 있지만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발전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다.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은 동학, 동학난, 동학운동, 동학혁명, 동학농민혁명등 다양한 용어와 의미를 달리하면서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었다.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우려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식민사관에 의한 자주적 역사관이 부족한 나머지 왜곡된 사실(事實)만을 기록에 의존하다보니 진정한 역사적 사관은 등한시 되었다.
역사는 권력을 잡은 정권의 노리개가 되어 사건보다는 인물이 부각되기도 하고 일부분의 시대적 사건만을 중시해 왔다. 이런 가운데 동학, 역시 지역적으로 너무나 다른 의미로 조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은 분명 역사적으로 중대한 기점이 될 것이다. 동학은 1860년 최제우가 창시한 종교적인 성격으로 시작되었다. 종교적 성격으로 사람중심, 인내천 즉 “사람이 곧 하늘이다” 는 동학사상을 중심으로 조선후기에는 사회개혁을 위한 중심적 사상으로 확산되면서 인간중심의 미래 지향적인 중심사상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제정함에 있어 동학은 한국사를 더욱 부각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는 분명하다. 동학이 본격화되어 사회적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사건 하나하나를 조명하면 어느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건이 없다. 그동안 전라도 정읍시에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황토현전투 승전일을 기념하여 40여년 동안 동학의 중추적 행사를 개최하고 그 규모 역시 지역단위 행사로는 최고의 행사를 펼쳐왔다.
비록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의 전주화약일을 기념일로 잠정 결정된 사항에 대해 거센 반대 분위기가 확산되고는 있지만 이 역시 동학농민혁명이 한국사에서 중요한 부분임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어떠한 결론이든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은 제정되어야 하고 국가 기념일 제정을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동학은 이제 지역성을 넘어 한국사의 중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에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합리적인 합의를 도출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논란에 보은은 동학농민혁명의 전사인 보은집회와 동학농민혁명의 마지막 전투지 라는 사실만으로도 동학은 보은의 정신이며 충청북도의 선양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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