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문화 개혁을 성원한다
상태바
장묘문화 개혁을 성원한다
  • 최동철
  • 승인 2015.04.02 18: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 뜨면 일했거니, 해 지면 누웠거니, 그러노라 육신은 덧없이 시들었고야. 육신이 시든 것도 섧거니와 나 어린 자들에게 상여꾼 되게 하니, 그토록 허무한 세상, 무에 그리 안타까워 그토록 애썼을꼬’

싯다르타도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었다. ‘태어난 모든 것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우리는 온 곳도 모르고, 가는 곳도 모른다. 탄생과 죽음의 양끝을 보지 못하고 부질없이 구슬피 울기만 한다. 지혜로운 자들은 이 참 모습을 잘 알아서 무작정 슬퍼하지 않는다’.

아마도 인생이란 것이 결국 이런 것일 게다. 뜻하지 않게 이 세상에 왔던 것처럼, 뜻하지 않게 저 세상으로 간다. 삶과 죽음은 ‘꿈속 세상’과도 같고, 한 줄기 바람과도 같으며 흐르는 강물처럼 일련의 과정일 뿐이다.

기독교 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중세 유럽 사람들도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은 우리와 별반차이가 없었던 듯하다. 죽음에 대해 그리 터부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을 일상사의 일부로 간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묘지는 외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 한복판이나 성당 주위에 있다. 우리의 무덤이 주로 한적한 산 속에 있는 것과는 상반된다. 집 가까이 무덤이 있으면 ‘으스스하다’며 집값에도 영향을 미친다. 헌데 유럽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기록에 의하면 그들의 공동묘지에도 차별이 있기는 했다. 비정상적으로 죽은 이들은 일반 묘지에 묻히지 못했다.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죽은 어린이는 교회 묘지의 바깥에 묻어야 했다. 아직 원죄가 지워지지 않았기에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살자, 사형수 등도 테두리 안에 묻힐 수가 없었다.

유럽 사람들은 죽은 자들의 터전 즉, 공동묘지를 산 자와의 분리된 공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묻힌 자들 대부분은 살아생전, 지금 살아 숨 쉬는 산자들을 위해 땀 흘리며 일했고, 사랑을 베풀었던 이들이다.

마을 중심에 묘지가 있으면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의 살아생전 기억을 떠올리며 쉽게 추모할 수 있다. 유럽 사람들은 공동묘지를 도심 속 공원녹지처럼 관리한다. 봄이면 많은 이들이 꽃을 심고 가꾼다. 겨울이 되면 나무에 옷도 입혀준다. 연인 등의 사시사철 산책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농촌의 산기슭 바른 양지는 죽은 자들의 영토가 된지 오래다. 무분별한 매장묘지 조성으로 해마다 우량농지도 줄어들고 있다. 우려스러움을 느끼던 차에 보은군에서 전국 최초로 읍·면단위 별 공원묘지를 조성해 우리나라 장묘문화의 일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녹지는 물론 정자 등 쉼터, 주차공간도 마련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 일이 성사된다면 모름지기 정상혁 보은군수 치적 중 으뜸이 될 게 분명하다. 장묘문화 개혁을 성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