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출신 항일 한글학자 ‘정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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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출신 항일 한글학자 ‘정열모’
  • 최동철
  • 승인 2014.10.0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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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0월 9일은 다시 국경일로 지정된 568주년 한글날이다. 때맞춰 지난 8월 서울시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희생된 애국선열 33인을 기리고 기념하는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을 종로구 세종로 공원 내에 건립했다.

기념탑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구금돼 모진 고문을 당한 애국선열 33인의 이름과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투쟁기, 옥중 고문기 등이 새겨졌다. 33인은 이윤재, 한징,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 이중화, 이우식, 이인, 김법린, 김양수, 김도연, 장현식, 장지영, 정열모, 김윤경, 이석린, 권승욱, 이만규, 이강래, 김선기, 이병기, 서승효, 윤병호, 이은상, 정인섭, 서민호, 안재홍, 신현모, 김종철, 권덕규, 안호상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 민족말살 정책에 따라 한글연구를 한 학자들을 민족의식을 고양시켰다는 죄목으로 탄압 투옥한 사건이다. 당시 일제는 우리 겨레 얼을 없애려고 학교에서 우리 말글을 배우고 쓰지 못하게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1942년 배달겨레말 사전을 만드는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그 지원자들을 일제는 사상범으로 잡아다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물 먹이기, 공중에 달고 치기, 비행기태우기, 메어차기, 난장질하기, 불로 지지기, 개처럼 사지로 서기, 동지끼리 서로 뺨치게 하기’ 등등 온갖 모욕과 고문에 한징, 이윤재 두 분은 감옥에서 죽음을 맞았다.

33인 중 한 명인 정열모(鄭烈模)선생은 1895년 11월 1일 충청북도 회인군 향상사동(현 보은군 회북면)에서 정해윤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장기(長?)이다. 그는 회인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여 주시경이 주도한 조선어강습원 고등과를 수석 수료했다.

일본 와세대 대학 일본어과를 졸업한 그는 귀국하여 서울 중등학교, 김천 고등보통학교 등에서 조선어 교원으로 재직한다. 그러면서 조선어사전편찬위원,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위원, 표준어 사정위원 등 ‘한글 지키기’에 안간힘을 쏟는 활동을 펼친다.

그러다가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됐던 정열모는 1944년 9월 30일 공소 소멸로 석방된다. 그 후 광복을 맞자 국학전문학교 교장, 숙명여대 교수, 홍익대학 초대 학장, 한글문화사 대표, 한글학회 이사 등을 역임한다. 특히 한글보급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도 했던 그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그만 월북해버린다.

그리고 김일성종합대학, 사회과학원 언어학 연구실 교수 등에 임명되어 연구를 계속하다가 1967년 8월 14일 향년 73세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저서로는 ‘조선어문법론’ ‘새로 읽은 향가’ 등 논문과, ‘신편고등문법’, ‘초급국어문법독본’, ‘고급국어문법독본’ 등이 있다.

여하튼 보은출신 항일 한글학자 정열모는 서울시의 ‘한말글 지킨 애국선열 33인’의 명단에 포함되어 뜻을 기리게 됐다. 김천시는 그곳에서 오랜 활동을 했다 해서 향토 문인·학자 대열에 이미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정작 고향인 보은군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어떠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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