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했던 그 시대, ‘소야의 노래’로 체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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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했던 그 시대, ‘소야의 노래’로 체감 한다
  • 최동철
  • 승인 2014.08.1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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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69주년 광복절이다. 이제 70대 중반 이상만이 일제 강점기 생활상이 어렴풋이 회상될 수 있는 시점에 이르렀다. 광복 후 69년이 흘렀지만 일본은 아직 ‘위안부’문제에 대해 진정 사과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술 더 떠 독도를 제 땅이라 우기며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등 억지마저 쓰고 있다.

일본이 이처럼 막무가내 생떼질 하듯 하는 것은 아베신조 총리가 만60세로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만행을 경험하지 않은 신세대이기 때문이리라. 마찬가지로 우리도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는 이유가 일제강점기의 폐해를 체험하지 않은 신세대 위정자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리라.

70대 중반 이하의 연령층은 사실 일제치하 시대의 고난과 고초를 알 턱이 없다. 그 시대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알 수 있는 것은 그나마 기록에 의한 것으로 알 뿐이다. 직접 체험해보지 않았으니 당한 이들의 원한과 울분을 십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를 노래한 우리 고장출신 오장환 시인의 ‘소야(小夜)의 노래’가 있다. 이 시를 읊조리다 보면 그 시대 처절했던 선조들의 울분과 통한이 마음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광복절을 맞아 시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암울했던 그 시대상을 느껴봄직도 색다른 체험이다.
‘무거운 쇠사슬 끄으는 소리 내 맘의 뒤를 따르고/ 여기 쓸쓸한 자유(自由)는 곁에 있으나/풋풋이 흰 눈은 흩날려 이정표 썩은 막대 고이 묻히고/ 더러운 발자국 함부로 찍혀/ 오직 치미는 미움/ 낯선 집 울타리에 돌을 던지니 개가 짖는다.// 어메야, 아직도 차디찬 묘(墓) 속에 살고 있느냐./ 정월 기울어 낙엽송에 쌓인 눈바람에 흐트러지고/ 산(山)짐승의 우는 소리 더욱 처량히/ 개울물도 파랗게 얼어/ 진눈깨비는 금시로 나려 비애(悲哀)를 적시 울 듯/ 도형수(徒刑囚) 발은 무겁다.//’

이 시에 대해 김태형, 정희성은 저서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을 통해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시의 화자는 ’도형수(徒刑囚 : 조선시대 오형(五刑)의 하나. 곤장 10대와 복역 반년이 한 등급)'로 등장한다. 실제로 그가 죄수라는 뜻이기보다는 식민지 현실 속에서 형벌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화자가 자기 인식을 드러내는 말이다.‘

그는 '무거운 쇠사슬'을 끌고 편력한다. 그에게 자유가 있다지만,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쓸쓸한 자유'일 뿐이다. '이정표 썩은 막대 고이 묻히고'는 눈길을 걸어 그는 '차디찬 묘 속'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눈길을 편력하는 화자의 발길은 무겁다. 스스로를 '도형수'라고 여기기 때문일 듯하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눈 위에 찍힌 '더러운 발자국'도, '치미는 미움'도 일제에 대한 분노일 것이 분명하다. '낯선 집 울타리에 돌을 던지니 개가 짖는다'는 것에도 낯선 집은 바로 왜놈의 집일 것임에 틀림없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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