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사람들이 아직 모르는 게 있다. 이까짓 가뭄보다 우려스러운 상황이 이미 벌어지고 있고 갈수록 더 심각해진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니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내 발등만의 불’이 아닌 만큼 지속적인 관심을 갖지 않는다. 농부도 매한가지다. 그것이 문제다.
우리네 한국 사람의 입맛에 기막히게 잘 맞는다는 작지만 매운맛의 ‘청양고추’가 있다. 맵고 컬컬한 음식조리에는 빠질 수 없는 식재료다. 1980년대 초, 제주산 고추와 태국산 고추를 잡종 교배하여 얻은 국산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현재 청양고추 종자는 다국적기업이자 세계 최대 화학, 종자회사인 몬산토의 소유로 등록돼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청양고추의 씨앗은 사실 중국 산둥성에서 채종된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케이비에스(KBS) 스페셜제작팀이 최근 발간한 책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를 보면 고추, 토마토, 딸기, 시금치 등 70여 채소품종이 몬산토의 권리에 속해 있다. 세계 상품 종자의 82%가 특허로 묶여 있다. 이 중 67%를 10대 다국적 종자회사가 점유하고 있다
제주도 특산품이라 할 감귤도, 세계에서 가장 맛깔스럽다는 한국산 김,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도 로열티를 물어야만 재배할 수 있는 처지로 전락했다. 2010년 농민들이 외국 기업에 지불한 특허사용료는 218억여 원에 달했다. 농민이 재주부리는 곰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우리의 씨앗을 지켜내지 못하고 외국기업에 빼앗기듯 헐값에 넘어간 때는 아이엠에프(IMF) 때이다. 당시 국내 1위의 종자회사였던 흥농종묘를 비롯해 중앙종묘, 서울종묘, 청원종묘 등이 외국계 기업에 흡수·합병됐다.
이는 곧 기업들이 보유한 종자들도 고스란히 다국적 기업의 소유가 됐다는 의미다. 아마도 이때 국내 채소종자의 50%가 외국기업에 장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허나 종자 특허권에 의한 로열티 지급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다국적 종자 기업들은 '수확물이 씨앗으로써 다시 싹을 틔울 수 없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슈퍼 종자, 이른바 ‘터미네이터 종자’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것만을 유통시킨다.
이런 종자 1세대는 크고, 모양도 예쁘고, 수확량도 많다. 하지만 수확된 2세대의 종자는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능력이 아예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즉, 잎과 꽃은 왕성하지만 거기 까지다. 그 종자는 딱하게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래야만 특허료를 받고 종자를 계속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빼앗긴 들에 봄이 오지 않듯, 지켜내지 못한 씨앗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심히 우려스럽다.
저작권자 © 보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