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여덟째 조건은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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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여덟째 조건은 ‘용기’다
  • 최동철
  • 승인 2014.05.08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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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 작품에 ‘더러운 손’이 있다. 권력을 잡거나 유지하는 등 목적을 위해서는 ‘손을 더럽히는 과정이 있어도 괜찮다’는 현실주의가 논제로 제기되는 내용이다.

사실 세상사의 뒤안길에는 늘 더러운 손이 작용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 돈을 더 많이 벌기위해 배를 개조하고 화물을 초과 적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수습 과정에서도 속속 드러나는 내용을 보면 어김없이 더러운 손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요즘 선거과정을 지켜보더라도 이 같은 더러운 손의 작용이 감지되는 듯하다. 군수든, 도의원이든 , 군의원이든 출마 후보로 나선 이들은 한결같이 깨끗하고, 정직하고, 옳고, 능력 있음만을 과시한다. 목적달성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그러나 정작 지난 행위 중 고의든 실수든 빚어졌던 자신의 잘못들에 대해 그것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는 출마자는 아직 없다.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그름을 묵인하지 않고 옳음을 내세우는 기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강함에 대항하여 약함을 돕는 굳센 의지이기도 하다.

사실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는 ‘자존심’형이다. 실수했다는 말을 듣는 것이 두려워 어떻게 해서든 그 상황을 모면하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다. 스스로 과오를 털어놓기 가장 어려운 유형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발뺌’형이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너무 커지자 무조건 부인하고 본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잡아떼는 ‘모르쇠’형이다. 네 번째는 잘못되거나 일이 잘 안될 때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남 탓’형이다. 가장 옹졸한 유형이며 줏대 없는 사람에게 많다.

6·4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러 쿵 저러 쿵 지역 출마후보자들의 인간 평이 구전으로 오르내리고 있는 때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토하고 고백하는 용기를 보인다면 그는 선량으로서 자격을 갖췄다고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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