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자와 베푸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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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자와 베푸는 자
  • 최동철
  • 승인 2014.01.0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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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가 즈음하니 출마를 외치는 소리들이 예서제서 시끌벅적하다. 마치 까치무리 속 까마귀 말소리 같기도 하고 백로무리에 섞인 까마귀 푸념소리 같기도 하다. 어찌됐든 허허롭게 들려오는 바로는 보은지역에는 믿고 찍어줄 만한 역량 있는 인물이 없어 안타깝다는 것이 싫든 좋든 지역의 공론이기도 하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오는 6월4일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자 처음으로 또는 두서너 번째의 출마를 준비한다는 이들의 동정을 접하면서 성경구절에 나오는 ‘탕자의 귀향’이 연상됐다. 성경 속의 탕자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집을 나가 허랑방탕하다 궁핍해져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온 방탕아(放蕩兒)를 말한다.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가 그린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에는 받기만 했던 둘째 아들의 용서를 비는 모습과 이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또 다시 베푸는 아버지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이는 마치 유권자와 출마자 간의 관계처럼 느껴진다.

닳아빠진 한쪽 신발이 벗겨진 채 남루한 옷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작은아들, 구부정하게 서서 돌아 온 탕아를 애틋한 표정으로 포옹하고 있는 아버지, 이를 지켜보며 책임감을 가지고 착실하게 집을 지키고 있었던 첫째아들의 질투와 분노가 잘 묘사됐다.

작품의 주제는 신약성서의 누가복음 15장의 이야기다. 두 아들 중 둘째가 아버지한테 자기 몫의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해 받아낸다. 그리고 타지로 나가 허랑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다 없앤다. 가난뱅이가 된 그는 남의 집 더부살이로 간신히 연명을 한다. 아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어 아들지위가 아닌 일꾼이 될지언정 아버지한테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멀리서 아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측은한 마음으로 달려가 아들을 포옹한다. 그리고 하인을 불러 ‘제일 좋은 옷을 꺼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주어라. 살찐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잔치를 벌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그러나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오던 큰아들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일부의 출마자들 또한 이같이 돌아온 탕자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에게 재산을 받아내어 흥청망청 써버리듯 유권자들로부터 받은 권한을 제멋대로 유기하거나 낭비해 버렸다. 자신들에게 위임했던 주권의 권한을 재임기간 동안 제대로 실천하고 성실하게 행사했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의 선량도 있다.

그러나 회개는커녕 반성조차 없으면서 또 유권자를 향해 당연한 듯 지지해 달라고 요구한다. 무엇을 믿고 이들에게 또 다시 재산을 안겨주어야 하나. 인물난 속 속절없는 유권자들의 마음만 애가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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