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교육이 먼저 돼야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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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교육이 먼저 돼야하는 시대
  • 천성남 기자
  • 승인 2013.12.1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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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찾는 외지내방객은 지위고하,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정중하고 예의로써 대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소위 일선 교육현장에서조차 이들 외지내방객에게 예절부재(?)를 보인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예절문화 아닌가.
‘아이교육보다 어른교육이 먼저 돼야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며 한탄어린 마음을 토로한 한 노(老) 교육자의 말에 자괴감마저 들 정도다.
40년 이상을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고 호흡하며 지낸 한 노 교사가 정년퇴직 후 교육 강사가 되어 교육현장을 다시 찾았을 때 큰 섭섭함을 느꼈다면 이는 정중히 사과하고 넘어갈 일임에 틀림없다,
이를 간과할 수 없음은 바로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아이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성교육이 이렇듯 교육현장에서조차 완전히 무시된 예절교육 행태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교육(敎育)의 개념을 살펴보면 교(敎)자는 왼쪽의 효(孝)자와 오른쪽의 편방인 복(?)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인데 효(孝)는 위에는 노(老)자, 아래는 자(子)로 이뤄져 부모와 자식이 분리 불가능한 몸임을 나타내고 자식이 어른을 받들어 모심을 나타낸다.
옆의 편방인 복(?)자는 북을 친다 또는 격려한다든가 장려함을 뜻한다. 그래서 교(敎)란 효(孝)를 장려한다는 글자이고 육(育)은 기른다, 장려한다는 뜻으로 교육이란 효를 가르치고 이를 장려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효가 왜 중요한가는 물음에는 효는 모든 인의(仁義)도덕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접촉하는 사람은 부모이고 자기를 돌보아주고 키워준 부모에게 효도하고 잘 모시는 일이 형제간 우애, 부부간 사랑,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돕고 사랑하는 것, 남에게 양보하거나 남을 먼저 배려하는 윤리, 도덕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교(敎)는 위에서 시행하고 아래에서 따른다는 뜻으로 육(育)은 자녀들에게 선을 행하도록 가르친다는 뜻으로 교육이란 웃어른들이 선을 행하면 아래의 자녀들이 선을 따라서 행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교육은 선행을 장려하고 악행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 있다. 이렇게 보면 교육이란 효와 윤리, 도덕을 가르치는 것이지 지식이나 기능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먼저 사람이 되고 난 후 학문을 배워야지 윤리, 도덕을 무시하고 지식과 기술에만 몰두하여 경쟁사회를 조성하면 지금과 같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안하고 문란한 사회가 되며 이런 잘못된 교육으로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되는 동시 교육에 따른 희생자가 나오게 된다.
소위 감투 쓰고 찾아오는 고위직 내방객이었다면 대우하는 입장이 분명 뀌었을 것이다.
일선 교육현장에서조차 외래방문교사들에 대해 교육현장종사자들이 지위고하, 빈부격차에 따른 홀대를 일삼는다면 이는 교육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횡포에 가깝다.
푸대접받는 이는 혼자만 속상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푸대접하는 이를 본 아이들이 그것을 본 따 그대로 행한다면 아이들이 바로 교육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나만 잘하면 그뿐이지’하며 간과할 수 있는 일 있겠으나 자라나는 새싹들의 참된 교육을 위해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크나큰 교훈이 될 법하다.
지위고하,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내방객들에게 예를 갖춰 대접하는 고유풍토가 하루빨리 되살아나야 시들어가는 교단의 품위와 탄탄한 교육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천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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