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현대사의 산 증인 고 정기술 옹

정 할아버지는 1906년 속리산면 사내3구(민판동)에서 태어나 같은 마을에서 1세기를 넘게 살다가 영면에 들었다.
정 할아버지는 45년간의 일본 식민지배와 수탈기를 거쳤고 해방의 기쁨과 6.25전쟁이라는 만족상잔을 경험했다.
70년대 근대화과정, 80년대 민주화과정,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를 모두 경험한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당시로는 결혼 적령기를 넘겨도 너무 넘겨 버린 노총각인 30세에 무려 11살이나 어린 아랫마을(사내1구) 안동권씨 가문의 권태순(당시 19세) 씨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슬하에 장남 상봉(79 사내3구)씨와 성순(69 탄부하장) 상례(66 대전) 상숙(58 대전) 상룡(55 예천) 상옥(53 대전)씨등 7남매를 낳아 키웠으나 넷째인 아들은 38세에 사고를 당해 가슴에 묻었다.
넷째 상숙 씨는 재대전보은중 동문회장을 역임한 고흥식 회장의 부인이다.
정 할아버지는 4대에 거쳐 손자 손녀 증손자 증손녀 등 자손이 무려 100여명에 이를 정도로 가문을 번성시켰다.
속리산면 민판동이라는 쓸 만한 전답하나 없는 산골에서 정 할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복조리를 만들어 자녀를 양육했고 타고난 손 솜씨가 좋고 부지런해 삼태기, 광주리, 지게 등 당시로는 생활용품을 만들어 생활하면서 평생을 보냈다.
자녀들이 부자이고 저명인사는 아니지만 모두를 번듯하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키운 정 할아버지는 “늘 근면해야한다. 성실해야한다. 검소해야한다. 고 가르치시며 평생을 부지런히 사셨다.”는 것이 다섯째 상봉 씨의 증언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게 살아온 정 할아버지는 자손들과 동네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107년간 살아온 이 세상을 떠나 영원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나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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