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 새벽시장 종횡무진해온 전통시장 터줏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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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새벽시장 종횡무진해온 전통시장 터줏대감
  • 천성남 기자
  • 승인 2013.03.14 0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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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숙씨 경원상회 대표

 지역경제가 되살아나려면 전통시장 활성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통념이다. 그러나 정작 소지역에 대형마트 등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이 변화해 대형마트를 선호, 점차 수요자들의 발길이 줄어들자 전통시장 내 상인들은 말을 잃은 지 오래다. 설상가상 최근 지역에서 일어난 콩나물밥 사건으로 서민들의 최고밥상인 콩나물이 마치 농약콩나물로 오인되면서 매기가 뚝 끊기는 큰 타격을 입었다며 이구동성 울상들이다. 특히 35년 간 전통시장 내에서 야채, 건어물 도소매 납품전문으로 성장해온 경원상회(대표 박종진·삼산로 17-24 ☎043-544-3145)의 안주인이자 대표역할을 맡고 있는 박창숙(63)씨는 수십 년 간 새벽현장을 발로 뛰며 살아온 전통시장의 또순이로 시장 활성화에 많은 역할을 해온 주인공으로 할 말이 많다. 그를 통해 현재 처해있는 전통시장의 어려움과 활성화 차원의 대책에는 무엇이 있는지 들어본다. 〈편집자 주〉


인구12만 시절 전통시장의 황금기 ‘그때가 그리워’ 한탄

인구12만 시절 전통시장의 황금기 ‘그때가 그리워’ 한탄

 

인구12만 시절 전통시장의 황금기 ‘그때가 그리워’ 한탄 “지역경제가 되살아나려면 전통시장의 활성화가 먼저 이뤄져야 해요.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차갑고 매섭기만 해요.” 35년 동안 새벽4시에 기상해 새벽시장을 종횡무진해온 전통시장 내 터줏대감인 그는 요즘 시장의 매기가 뚝 끊긴 것을 바라보면서 긴 한숨을 들이 내셨다.
“보은인구가 12만으로 들끓던 그 당시는 우리 전통시장이 영화롭던 시절이었어요. 그때는 전통시장 안이 밀리고 쓸려 사람조차 지나다니기도 쉽지 않던 그런 시절이었지요. 그야말로 황금 같은 전성기를 누렸던 때가 있었어요. 그러나 1980년, 1990년 수해가 두 번째 되풀이 나면서 보은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인구도 많았지만 대형 유통업체들이 없었던 탓인지 무엇을 팔던지 장사가 불티나게 됐던 시절이었지요. 그때가 너무나 그립지요.”
한창 전성기였던 1975-88년 당시 전통시장의 찬란한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는 울화가 치민다며 답답한 속내를 이렇게 털어놨다.

 


새벽3시면 기상 대전중매시장서 물건 받아 호텔 등에 납품
“우리 큰 딸이 백일 때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으니, 그때가 1975년쯤 되니 벌써 35년이 되었네요. 그러나 지금까지 장사를 해오면서 전통시장 안에 사람 발길이 끊겨 이렇게 비참한 생각이 들 정도로 참혹한 때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이 사업을 일으키려고 많이 노력해오다보니까 아직까지 전통시장 번영회장을 맡고 있는 남편(박종진 회장)은 너무도 고생을 많이 했어요.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직접 좋은 물건을 싸게 받기 위해 대전 중매시장에서 물건을 받아 학교로, 호텔로 지역 내 업체에 도매가로 식재료를 납품하는 등 활발한 사업을 해왔어요. 그러나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1988년(당시) 새벽, 공중전화를 걸려고 세워두었던 택시를 훔친 한 19세 고교생으로 인해 인생이 확 바뀌었어요. 학생이 질주해온 그 차로 우리 화물차를 들이받아 남편과 나는 중상을 입었어요. 남편은 오랜 병원생활을 한 것은 물론 나는 지금까지도 한 다리가 신경마비로 잘 걷지 못하는 장애를 겪고 있거든요.”


지역 내 기업체·호텔관광 숙박업소 등 전통시장 거래해야
“지역경제가 살아나려면 지역 내에서 사업을 하는 대기업이나 호텔, 관광 숙박업소 등이 전통시장을 이용해야 한다고 봐요. 그러나 현실은 지역을 밟고 사는 업체들이 점차 전통시장을 이용하지 않고 대전이나 경기도의 무슨무슨 대형 푸드업체로 옮겨가고 있어요, 최근에도 많은 업체들이 우리 전통시장을 이용하지 않고 타 지역에서 구입을 해오니 시장 상인들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요. 최근에는 농협에서조차 장례식장을 인수하는 바람에 물건 공급도 끊겼어요.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에요. 전통시장의 불황타개를 위해서는 이들 대기업체들이 지역 내 전통시장을 이용하려는 자세들이 있어야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콩나물밥 사건이후 콩나물수요 발길 뚝 끊긴 전통시장

콩나물밥 사건이후 콩나물수요 발길 뚝 끊긴 전통시장

 

콩나물밥 사건이후 콩나물수요 발길 뚝 끊긴 전통시장 “주부들은 대개 콩나물을 사러오면서 대파나 마늘 등 그외 다른 반찬거리들을 사가거든요. 그러나 그 사건 이후 전통시장에는 콩나물을 사러오는 주부들의 발길이 뚝 끊겼어요. 상인들 모두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하루 5통씩 판매되던 콩나물이 이젠 온종일 팔아봐야 오전 1000원어치 마수한 것이 고작입니다. 하루하루 밀려대는 콩나물 통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을 지경이에요. 한 달에 300통 나가던 콩나물이 현재 50통으로 줄었어요. 하루빨리 범인이 잡히든가, 사건 진상이 밝혀져야 우리가 살 수 있어요. 뉴스에서는 분명 농약이 간장에 들어있다고 했는데 대부분의 지역 언론들이 ‘농약콩나물’ 용어로 제목이 나가니 사람들로 하여금 인식이 그럴 수밖에 더 있겠어요. 사람들의 오인으로 애꿎은 콩나물에 죽어나는 건 우리전통시장 상인들과 콩나물공장이에요.”

 


수년 전부터 직접 대전 중매시장에 나가 식재료 구입해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식사준비와 빨래를 해놓고 절절매는 아픈 다리 이끌고 대전 중매시장가서 직접 싸고 좋은 물건을 받아와야 합니다. 남편이 많이 아파 이 일을 할 수 없으니 대신할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지요. 일요일만 빼고 하루라도 놀면 안 되니까 매일 강행군을 할 따름이지요. 그러나 아무리해도 일이 기쁘지 않은 것은 얘기하기도 미안할 만큼 매출액도 놀랄 만큼 빠지고 있어요. 지역 업체나 호텔, 관광, 체험학습 시설 등에서도 향토식품인 방풍나물이나 냉이 같은 것은 주문하지만 그 외 물품은 모두 외지식품업체에서 들여옵니다. 오죽하면 10년 넘게 거래해온 업체도 그렇게 휑하니 빼가니 이건 가슴이 답답하고 통탄할 일이죠. 최근에는 시간이 남다보니 시작한 일이 바로 식재료를 사가는 주부들이 김치를 담가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면 김치를 담가줍니다.”


보은죽전 출생, 남편은 고엽제전우회보은지회 이끌어 와
“저는 보은읍 죽전리가 고향이에요. 삼산초등학교 52회로 입학을 했지만 이런저런 사연으로 졸업은 53회로 했어요. 가정환경은 친정이 잡곡가게를 하다 보니 어릴 적부터 농사는 잘 몰라요. 그래서 식품 도·소매업을 하게 된 거죠. 남편은 경북영주 출생으로 월남참전을 했어요, 그 덕분에 현재까지도 고엽제전우회보은지회를 이끌고 오고 있어요. 몸이 너무 나빠 그만두려 하지만 고엽제전우회원들이 허락을 하지 않아요. 그분들을 위해 너무 고생을 많이 했어요. 병들고 어려운 분들이 수술을 밟아야 할 때 남편은 내일처럼 물불 안 가리고 보훈처다, 병원이다, 검사를 마칠 때 까지 일을 도와주곤 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많은 분들이 병든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어 남편이 명을 길게 잇는다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고마운 일이죠.”
‘호랑이도 잡을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그이지만 아픈 다리를 이끌고 늘 대전 새벽시장을 다녀야 하는 탓에 현재 몸이 아픈 아들이 아닌 조카와 대전 경매시장을 돌아보고 온다.
가족으로는 남편 박종진(68)씨와 2남1녀를 두고 있는 그는 고교 시절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이 늘 안쓰럽다며 오늘도 새벽부터 종횡무진 시장을 누비며 지역 내 모든 업체들이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희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천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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