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는 벌써 들녘에서 과수나무의 전정을 한다. 퇴비를 내고 씨앗을 준비하는 등 농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올 풍년농사를 위해 새롭게 시작하려는 움직임들이다.
이때는 초등학교에 첫 등교를 준비하는 병아리 신입생이건, 사회로 배출된 초짜 신출내기 신입사원이건 대체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는다. 당연히 기성인들도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는 매한가지다.
봄이 주는 뉘앙스는 늘 그랬다. 지난겨울은 몹시 추웠다. 눈 또한 많이 내렸다. 그렇지만 그 기억은 이미 뇌리에만 아스라이 남아있다. 한파를 겪으며 생활고와 추위에 몸서리쳤을 홀몸노인조차 이제 봄의 따스한 기운을 느낄 터다.
‘지나가 버린 것은 모든 게 다 아름다웠다’고 한하운 시인이 읊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지난 것들에 대한 모든 것을 종결짓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지나가 버렸다 해서 굳이 단절해 버리거나 단절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인정만 하면 된다.
중국 후한시대 맹민이란 사람이 있었다. 산동(山東)의 거록지방 출신으로 태원 땅에서 타향살이를 했다. 몹시 가난하여 젊은 시절 공부도 못하고 시루 장수를 하며 근근이 살아갔다. 어느 날 시루를 팔기 위해 이 동네 저 동네 지고 다니다가 넘어져 시루를 깨뜨리고 말았다.
사업밑천이던 시루가 산산조각 박살났으니 그의 전 재산도 날렸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는 훌훌 털고 일어나더니 미련 없이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려 했다.
곽태는 태원 지방의 존경받는 명사였다. 그가 그날 그 시간에 마침 맹민의 행동을 보게 됐다. 보통 사람 같으면 깨어진 옹기 조각을 끌어안고 탄식하거나 애통해 했을 만 했다. 그래서 왜 의연한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그러자 맹민은 "시루가 이미 깨졌는데 돌아본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해야지요"라고 대답했다.
곽태는 맹민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학문에 전념토록 후원했다. 그 후 10년이 지나 맹민은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고 삼공(三公)의 지위에 올랐다. 여기서 비롯된 고사성어가 타증불고(墮甑不顧)다. 즉, 이미 지나간 일이나 만회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미련을 두지 않고 깨끗이 단념하는 것을 비유할 때 사용된다.
다음 주 월요일 자정부터는 ‘박근혜 정부’의 5년간 임기가 새롭게 시작된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바뀌고 통치자 또한 바뀌었지만 대부분의 구성원은 그대로다. 당 로고가 바뀌고 상징 색마저 파격적인 붉은색으로 변신했다지만 ‘가는 정권’과 근본은 같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새 정부는 국정비전을 ‘희망의 새 시대’라고 정했다. 역설적이게도 지난 정부 통치기간은 ‘절망의 시대’였음을 암시한다. 실정을 인정한 것이다. 그럼 새 시대는 ‘희망가’를 부를 수 있게 될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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