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유지도 위태롭다. 윤리와 도덕이 붕괴되고 편법과 탈법이 만연하다. 법치국가의 마지막 보루인 검찰과 법원마저 권력을 오남용해 정의를 희롱한다. 개인 및 집단이기주의도 예서제서 만용을 부린다. 세대 간 갈등, 양극화 현상, 계층 간 불신과 불만이 그득한 채 수수방관되고 있다. 혼탁한 세상인 것이다.
중국 초(楚)나라 출신으로 만인의 추앙을 받았던 굴원(屈原)이란 대시인이 있다. 혼탁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인격을 중시했다. 모함 받아 벼슬에서 추방당한 후 타향에 은거하며 왕의 부름을 기다렸다. 이 때 쯤 비분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부와의 대화인 ‘어부사(漁父辭)'에 잘 나타나 있다.
추방된 굴원이 강과 호숫가를 떠돌며 시를 읊고 방황하니 안색과 몰골은 초췌했다. 어부가 그를 보고 말했다. “그대는 초나라 삼려대부가 아니시오. 어찌 이곳에서 방랑하시오” 굴원이 말했다. “세상이 모두 탁해졌는데 나 홀로 맑고 바르고자 했으며,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 몽롱하거늘 나 홀로 술 깨어 있고자 했었소. 이런 연유로 추방되었소”
어부가 다시 말했다. “성인은 만사에 엉키거나 얽매이지 않고 능히 세속과 어울려 옮아갈 수 있다 했소. 세인이 모두 탁하다면 왜 그대는 썩은 진창의 물을 더욱 어지럽게 하여 탁한 물결을 일게 하지 않으셨소. 또한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 세인이 혼몽하다면 왜 그대는 어울려 술지게미를 먹고 독한 술을 마시지 않으셨소. 무슨 까닭에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하여 스스로가 추방되게 하였소.”
굴원이 말했다. “내가 듣길, ‘새로이 머리를 감은 사람은 관을 털어 머리에 얹고, 새로이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턴 뒤 걸친다’라고 했소. 그러니 어찌 청결한 몸에 더럽고 구저분한 것을 받을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배 속에 묻히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오”
어부가 웃으며 노를 저어 배를 몰아가며 노래를 지어 말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고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 어부가 어딘가로 가 버려 다시 더불어 말을 나누지 못했다.
이 후,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 굴원은 결국 59세를 일기로 멱라수에 몸을 던져 생을 마쳤다.
대학교수들이 2012년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어부사의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擧世皆濁(거세개탁)'을 뽑았다.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힘들다는 의미다. 위정자와 지식인의 자성을 요구한 것이라는 게 교수신문의 분석이다.
임진년도 뒤안길로 갈 때가 됐다. 새 해에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만 생기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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