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2시 지상파 아날로그 텔레비전 방송이 보은지역에서는 종료됐다. 디지털로 전환하지 못한 시청자 가구는 지금이라도 정부지원을 신청하면 된다. 최소한, 2만원의 부담금을 납부하면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변환시켜주는 컨버터를 지원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 정부가 첫 지원했던 매스미디어(mass media)는 60년대 농촌지역 등에 설치했던 ‘유선라디오’라고 할 수 있다. 청취자의 집마다 선(삐삐선)으로 연결한 나무상자의 스피커가 있었다. 당시의 초기 스피커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외국 고물상을 통해 수거해 온 재활용품이었다고 한다. 청취 방송은 중계소에서 보내주는 대로 들어야 했다. 청취자들은 뉴스와 국군의 방송 등을 들으며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있었다. 연속방송극과 어린이 방송의 ‘태권동자 마루치’를 비롯해 ‘절망은 없다’ ‘전설 따라 삼천리’ 등은 많은 청취자를 울고 웃기는 등 쥐락펴락하다시피 했다. 청취료는 여름에 보리 한 말, 가을에 벼 한 말 이였다고 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산간오지 지역에서는 그야말로 고마운 문화 혜택이었다.
비슷한 시기 흑백텔레비전 시대가 열렸다. 얽힌 일화가 있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육군소장의 군사정부는 국민에게 정당성을 역설하고 또 위무(혹은 우민화 정책)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드디어 12월31일 첫 방송이 개시됐다. 텔레비전은 새로운 전자전파 시대를 상징하는 환상의 첨단 미디어였다. 군사정부의 깜짝 선물로 국민은 쿠데타를 잊어버린 채 텔레비전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때로부터 20년이 흐른 뒤 컬러텔레비전 시대도 열렸다. 얽힌 일화도 비슷했다. 1979년 12월12일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육군소장의 신군부도 따가운 국민의 이목을 딴 데로 돌릴 수단이 필요했다. 전 정권에서 연기되어 오던 컬러텔레비전 방영이 ‘당근’역할을 할 것으로 결정됐다. 1980년 12월 1일 오전 10시 케이비에스(KBS)는 ‘수출의 날’ 기념식을 천연색으로 첫 방송 했다. 국민은 또 다시 쿠데타를 잊은 채 화려한 컬러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1995년에는 케이블텔레비전이 출범했다. 뉴스, 영화, 교육 등 11개 분야의 21개 채널로 방송이 시작됐다. 2001년 12월에는 본격적인 위성방송도 시작됐다. 안테나를 세웠어도 전파가 잡히지 않던 난시청지역이 거의 없어졌다. 뒤를 이어 2005년에는 최초의 디지털 이동방송서비스인 디엠비(DMB)가 시작됐다. 휴대폰과 내비게이션 등 기기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시대가 열렸다. 2008년 말에는 방송통신융합 서비스인 아이피티브이(IPTV)방송도 시작됐다.
그리고 컬러텔레비전 방송 32년째인 올 12월엔(보은지역은 9월 24일) 차세대 방송인 디지털텔레비전으로 완전 전환된다. 텔레비전이 직접 인터넷이 될 수 있는 인터넷텔레비전 형태로 진화되는 것이다. 리모컨으로 웹을 검색하고 동영상을 다운받고 메일도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됐다. 이제 텔레비전은 시청만을 위한 기기가 아닌 시청자가 적극적으로 뉴스, 일기예보, 증권, 유씨씨(UCC) 등 유익한 정보와 흥미로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마법 상자’가 됐다. 마치 실물이 앞에 있는 듯 착각을 갖게 하는 3차원(3D) 입체 방송도 일부 방송된다. 아날로그 방송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우리의 눈길은 새 텔레비전에 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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