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눈에 비친 ‘가난’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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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눈에 비친 ‘가난’이라는 것
  • 최동철
  • 승인 2011.10.2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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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일본에서 한 초등생의 ‘가난’이란 제목의 작문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사회전반에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은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합니다. 저희 집 두 대의 차량 운전기사 두 분은 아직도 차를 갖지 못했습니다. 또한 가사 일을 전담하는 3명의 아줌마들도 각각 자신의 집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가족처럼 비싼 옷을 입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가난 합니다’라는 식의 작문을 했던 것. 종전이후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했던 일본의 이 학생은 가난을 경험할 틈이 없었는지 가난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었던 것이다.

관자(管子)의 목민 편에 보면 ‘창고가 그득하면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하면 영욕을 안다’는 ‘의식족이지예절(衣食足而知禮節)’이란 말이 있다. 즉, ‘내 배가 고프면 남의 배고픈 것을 동정할 여지가 없고,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명예 같은 것이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질 리가 없다‘는 뜻이다. 일제치하의 압제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며 초토화된 국토에서 몹시도 어렵게 살아야 했던 우리 어버이세대는 관자의 말 의미를 뼈저리게 안다.’가난‘이란 소리만 들려도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짓기 일쑤다.

정말 가난했던 시대였다. 먹고 살아남기 위해 팔에 갈고리를 단 상이용사들은 구걸을 다녀야 했다. 부지깽이를 들고 커다란 망태를 짊어진 사람들도 수시로 집에 들어와 뭔가를 찾거나 요구했다. 깡통든 거지도 흔했다. 입을 줄이기 위해 딸을 서울로 ‘식모살이’ 보내기도 했고 공장 일자리를 찾아 가출하기도 했다. 연중 식량이 더욱 궁핍한 봄철 춘궁기 때는 배가고파 ‘밀, 보리’를 얼굴이 온통 숯 검댕이 가 될 정도로 불에 구워먹기도 했다. 감꽃, 진달래꽃, 아카시아 꽃은 물론 죽는 것만 아니면 모든 것을 먹어댔다. 서울이건 농촌이건 먹을거리가 귀했다. 가난은 배고픔에서 비롯됐다.

요즘의 우리나라 초등생들은 가난을 ‘나의 보호자가 돈이 없다고 할 때’, ‘친구가 나보다 용돈이 더 많을 때’ 등 이라고 답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세계 빈곤퇴치의 날’을 맞아 초등학교 4∼6학년 234명을 대상으로 가난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결과에서다. 이외에도 ‘가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으로 ‘돈이 없는 사람’, ‘돈이 없어 물건을 사지 못하는 것’, ‘돈을 벌지 못하는 것’ 등 돈과 관련한 답변이 72명(30.7%)으로 가장 많았다. 그리고 거지, 지하철 노숙자, 아프리카 등을 차례대로 꼽았다.

아이들은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현재 우리의 초등생들은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에 대해 ‘돈을 벌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서’라고 가장 많이 답했다. 다음으로 ‘직장을 잃어서’, ‘잘 배우지 못해서’ 순이었다. 가난을 없애는 방법 또한 ‘돈을 벌 수 있도록 직업을 준다’ 등 ‘개인’의 역할을 제의했다. 물론 ‘부자가 기부를 많이 하게 한다’는 의견도 있기는 했다. 친구가 부자라고 느낄 때는 ‘좋은 집에 살 때’라고 답해 집을 부자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어 ‘먹고 싶거나 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살 때’,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을 때’라고도 답했다.
우리의 아이들은 가난을 물질적인 것과 사회보다는 개인 탓으로만 인식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을 알고 만족하면 마음이 행복한 진짜 부자(지족안분 知足安分)’라고 귀띔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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