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에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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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에 관심을
  • 김인호 기자
  • 승인 2011.10.2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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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분묘인 고인돌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관리가 필요하다. 매장문화재로 선사-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이 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으나 관리는 고사하고 무관심으로 고인돌인지 평범한 바위인지 어지간해선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방치돼 있다. 경기도 연천의 전곡리 구석기유적지와 전북 고창의 경우 고인돌을 활용, 축제로 승화시킨 것과는 대조된다. 고인돌 유적지라고 길거리 안내표지판만이라도 설치한다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산 교육장이 되면서 훼손도 방지하지 않을까.
보은에는 15기의 고인돌이 문화유적지 분포지도 상에 기재돼 있다. 마로면 송현리 9기, 삼승면 천남 2기, 상가 1기, 구암 2기, 회남면 신추리에 1기 등이 등록돼 있다.
삼승면 내망 2리 새말에는 수 톤이 나갈 만한 바윗돌이 있다. 청색계열에 편마암으로 가로와 세로 길이가 각각 2m, 두께 70~80㎝ 정도의 고인돌이 정사각형에 바둑판같이 깔끔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불과 20m 떨어져 생활하는 고인돌 아닌 보통 바위로만 알고 있다. 이 마을 출신의 주민은 “고인돌 축제까지 열리는 연천, 강화, 순창, 고창 등 특정지역에만 고인돌이 있는 줄 알았다”며 “우리지역에 있는 고인돌을 보니 친근감이 더 간다”고 말한다.
삼승면 천남 2리 각골마을에도 두 기의 고인돌이 있다. 원남에서 관기 가는 도로변에 한 기(화강암 계열로 가로 1.5m, 세로4.5m), 그 위쪽에 다른 한 기(화강암류로 가로·세로 각각 3m, 1.5m)가 분포한다. 도로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있는 고인돌은 덩굴로 둘러싸여 있어 외형상 고인돌이란 흔적조차 발견키 어렵다. 특히 고인돌 바로 옆이 퇴비장이면서 잡초에 묻혀 역사 유적지로 보기 민망하다. 논 가운데 있는 다른 한 기는 한눈에 고인돌이란 인식이 들 정도로 비교적 잘 보존돼 있지만 농지로 추수기에는 외관상 고인돌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곳을 지나 탄부면 구암리에도 군락으로 형성된 고인돌이 여러 기 있다. 구암리는 9개의 지석이 있어 구암리란 지명이 유래한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그러나 경지정리가 되면서 몇 개는 도로 속으로 파묻히고 지금은 5~6개의 고인돌만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에는 개인집 마당에도 있다. 석질은 내망리 것과 같은 청색톤의 편마암으로 동일 지역에서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로면 송현리에도 여덟기의 고인돌이 있다. 마을 초입에 자리한 여덟 기가 20m 이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규모도 상당하다. 고인돌이 좌우 대오를 지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이 마을 주민들은 고인돌 중의 한 바위를 일컬어 ‘마을 주민들이 칠성바위라 부른다. 고인돌이란 사실을 모르는 눈치다. 회남면 신추리 고인돌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이들 지역에 있는 고인돌은 매장문화재로 문화유적분포지도 상에 기재돼 있다. 마로 송현리의 경우 중부내륙지역에서 희귀한 사례로 꼽혀 도문화지정을 권고 받은 상태다. 고인돌은 받침이 있는 고인돌과 없는 지석으로 분류되는데 고인돌 아래 부장품으로는 돌칼, 화살촉, 토기류, 청동유물 등이 출토돼 매장문화재로 지정받으면 보호조치 할 수 있지만 사유지에 분포하기 때문에 토지주와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보은에 있는 고인돌은 차량통행이 빈번한 지방도로에 모두 가깝게 위치해 있다. 특히 삼승 ,마로, 탄부 일대는 10㎞ 이내여서 고인돌이란 알림 표지판만 설치해도 대내외 관심을 유발시킬 수 있다. 특히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임한리 솔밭과도 가까워 대추나무 가로수길과 더불어 탐방코스로 가치가 있다.
/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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