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과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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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과 수박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1.07.2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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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밑에 호박을 심고서 줄기가 타고 올라 갈 수 있도록 나뭇가지를 기대어 세워 놓았더니 어느 새 담장은 물론이고 닭장 지붕까지도 덮을 만큼 왕성하게 뻗혀서 이제는 제법 여러 개의 열매를 계속 맺으며 며칠 새 두 주먹보다도 더 크게 자란다. 그중에 어느 것은 반찬으로 식탁에 오르게 되고 어느 것은 그대로 늙어가게 되는데 특히 요즈음 같이 비가 자주 내리는 날에는 애호박을 따다가 전을 부쳐 먹는 것도 별미라서 또 하나의 먹는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흔히 말하기를 횡재를 했거나 행운을 얻었을 때에는 호박이 넝쿨 째 굴러들어 왔다고 하며 호박을 복의 상징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아마도 푸짐한 덩치에서 오는 호감에서 비롯된 듯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식물의 열매 중에는 호박 보다 더 큰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몸집이 크고 얼굴이 예쁘지 않은 이를 가리켜 호박 같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늙은 호박에 비유하는 말 일 것이지 애호박에 비유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사람의 유년기와 노년기를 애와 늙은이로 구분하는 것처럼 식물의 열매를 두고 애와 늙은 것으로 표현하는 것도 호박 밖에 없는 것 같다. 더러는 늙은 오이 늙은 가지로 말하기도 하지만 애오이 애가지로 부르는 예는 흔치를 않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사람도 늙으면 겉모습이 예쁠 수가 없는데 호박인들 어찌 애호박 때와 같이 예쁠 수가 있으랴? 또 한 때는 젊은이들에게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느냐고 하는 유행어가 있었듯이 수박을 우대하고 호박을 비하하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호박의 진가를 모르는데서 온 것이라 여기고 싶다. 물론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말처럼 요즘 같은 한여름 복더위에는 수박이 제격이다. 휴가철을 맞아 피서를 떠나는 이들의 승용차 짐칸에는 수박 한 개쯤은 다 준비 되어 있을 것이다. 이 처럼 여름철에는 수박이 우리들의 기호 식품이 되고 있어 수박을 폄하 할 생각은 전혀 없으나 궁극적 평가를 할 때에는 수박은 호박에 비교하여 결코 그 가치를 따를 수 없다고 여겨진다. 그 이유로는 첫째 수박은 노지에서 자라지만 옛 부터 호박은 울타리나 지붕 위에서 고고하게 자란다. 둘째 수박은 여름 한 철이지만 호박은 이른 봄 늦가을 까지 풍우와 찬 서리를 견디며 생을 연단 한다. 셋째 수박은 두 세 개의 열매를 맺지만 호박은 왕성한 생명력으로 여름부터 가을 까지 많은 열매를 맺으며 끈질긴 삶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넷째 수박은 완숙 되지 않으면 쓸모가 없으나 호박은 애호박에서부터 늙은 호박 까지 모두 우리의 식탁에 오르게 된다. 다섯 번째로 수박은 장기간 동안 저장이 불가능 하나 호박은 저장이 가능하여 겨울철에도 별미로 먹을 수 있고 특히 산모의 보양식으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어서 딸이나 며느리의 해산을 대비하여 늘 준비해두는 식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박은 늙을수록 속을 채우지만 호박은 속을 비워 감으로 비우는 삶의 철학을 가르쳐 주고 있다. 사람이 마음을 비우고 살 줄 알면 행복을 얻게 된다고 하는데 비우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호박은 그 진리를 깨우쳐 주는 것 같아 그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 하고 싶다. 또 살아가면서 힘들거나 언짢은 일이 있을 때에는 호박처럼 둥글둥글 살아가라고 하여 여유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일깨워 주기도 한다. 그러기에 호박은 우리 선조들로부터 복의 상징으로 사랑을 받으며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 되어 진다.
요즈음 성형외과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많은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방학이나 휴가를 이용하여 성형 수술을 할 것이라는 실태 조사를 들은 적이 있는데 특히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성형 수술이 필수라는 말까지 있고 보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월여 전 어떤 일로 서울 압구정동을 갔었던 일이 있는데 대로변에 다른 병원 간판은 별로 보이지 않고 성형외과 병원 간판만이 즐비하게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결코 나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호박에 줄을 그어 겉 만 수박처럼 보이게 하려는 인위적인 아름다움 보다는 신체발부수지부모 라는 가르침처럼 부모로부터 받은 본래의 나로 사랑을 받고 또 나를 통하여 나의 내면에 감추어진 참 아름다움을 찾아서 그 아름다움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실 되고 정직한 삶 일 것이라는 생각도 가져 본다. 그리고 호박이 넝쿨 째 굴러 오는 횡재를 기대하기보다는 비우며 살아가는 호박의 교훈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 김 정 범 내북면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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