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 지덕사보에 수록
양녕대군의 후손들이 발행하고 있는 ‘양녕대군 지덕사보, 2006년 봄호에 양녕대군의 한편의 시가 실려 속리산 만수리 이화동(오얏골)이 “전주이씨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 속설만은 아니었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이 책에는 1457년(세조3년) 양녕대군이 속리산 이화동 인근 산에서 사냥을 하던 중 시월 이십사일 단종의 흉서 소식을 듣고 애통해 한 시다.
이 시에는 용어귀화처(아~임금님이시여 어디로 가셨나이까) 수운기월중(구름은 시름인양 영월하늘 떠오르고) 공산시월야(온산은 텅빈 듯이 쓸쓸한 가을밤에) 통곡소창궁(통곡소리 저 하늘에 사무치는 구나)로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속리산면 삼가리 마을 자랑비에는 이화동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만수리 산7-2번지 일대 산은 전주이씨 양녕대군파 종중소유로 되어있어 속리산이 양녕대군과 무관하지 않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오랫동안 종중일에 힘써온 양녕대군 18대손인 이병관(79세 전 삼승면장)씨는 “우연히 만수리 산7-16번지 뒤 100여m 높이에 어떻게 보면 사냥개 모양이구, 어떻게 보면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 애통해 하는 모습 같기도 한 바위가 있다.”“ 동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부처바위라고 하더라”며 “이 근처에 세종대왕이 성군의 자질이 있음을 알고 일부러 기행을 통해 세자의 자리를 버리고 세종대왕을 왕위에 올려 성군이 되도록 한 양녕대군의 지덕을 기리기 위해 비를 이곳에 세우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향토사학회 관계자는 “양녕대군의 유허지가 보은에 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없다.”면서 “그러나 양녕대군 자손들의 주장이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각종사료를 발굴하여 이를 뒷받침 한다면 향토사의 좋은 자산이 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나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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