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픈 대로 다해도 어긋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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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대로 다해도 어긋남이 없다
  • 최동철
  • 승인 2011.07.07 0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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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혁 보은군수 체제로 군정이 펼쳐진지 1년이 됐다. 이를 기념(?)하듯 때를 맞춘 각 언론의 특집에는 보은군수의 자화자찬이 그야말로 성찬을 이룬다. 미진하거나 덜 된 부분에 대해선 미안하다거나 해명은커녕 일언반구조차 없다. 그러니 표현한 그대로 내용을 받아들일 순진무구한 주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칭찬이건 자찬이건 간에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해가되고 독이 될 수 있다. ‘늙거나 둔한 말도 천리마의 하룻길을 열흘에는 갈 수 있다’는 노마십가(駑馬十駕)의 의미처럼 ‘목표를 향해 열심히 하고 있다’고 진정성을 엿보이면 이심전심 통한다.

노익장(老益壯)이란 나이가 들었어도 젊은이다운 패기가 변하지 않고 오히려 굳건함을 형용하는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서 비롯된 고사에 나온다. 마원은 후한 광무제(光武帝) 때의 명장이다. 그가 독우관(감찰관)이란 벼슬에 있을 때 많은 죄수들을 압송하게 되었다. 도중에 죄수들이 고통에 못 이겨 애통하게 부르짖는 것을 보고 동정심이 우러난 그는 모두 풀어주어 제각기 제 살길을 찾아가도록 했다. 자신도 북방으로 달아나 소·말·양 따위를 방목하며 지냈다. 부지런하고 수완이 좋은 그는 수년간 정성껏 가축을 길러 그 규모가 수천 두까지 이르렀다. 생활이 윤택해지고 많은 돈을 벌게 되자 가까운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고, 자기는 오히려 떨어진 양가죽 옷을 걸치고 소박한 식사를 하는 등 근검한 생활을 했다. 그는 항시 친구에게 “대장부는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 그리고 또 “가멸다하더라도 사람에게 베풀지 않으면 수전노일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보은군은 ‘인생팔십금래풍(人生八十今來豊)’이라 말을 할 정도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나이 70을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노래한 시성(詩聖) 두보는 쉰아홉 살에 죽었다. 하지만 요즘의 고희 연식(年食)은 노년의 티를 찾기 힘들다. 우리 나이로 일흔인 정 군수를 보면 그렇다. 매사 의욕적이고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다. 요즘같이 무더운 날 이마와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힌 채 바깥 군정업무를 보는 정 군수에게선 노익장의 풍모가 엿보인다. 지난 1년 간 주말과 휴일에도 단 하루 쉬지 않고 출근을 했다하니 눈치코치 살피랴 일부 산하 직원들은 불만도 있었겠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만큼 보은군은 유지 발전했을 터이고 주민들 또한 알게 모르게 각종 행정력의 혜택을 입었을 것이다.

나이 70을 칠순(七旬) 고희(古稀) 희수(稀壽) 그리고 종심(從心)이라고도 한다. 종심은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는 열다섯 살 때 학문에 뜻을 두었고(學) 서른 살에 뜻을 세웠다(立). 마흔 살 때 미혹에 빠지지 않게 된 다음(不惑) 쉰 살에 인생의 소명을 깨달았다(知天命). 그리고 예순 살이 된 뒤에야 어떤 말을 들어도 화가 나거나 귀에 거슬리지 않았고( 耳順) 일흔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여도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從心所慾不踰矩)는 것이다. 즉 마음이 시키는 대로, 혹은 아무런 생각 없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여도 어떤 규율이나 법도·제도·원리 등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정 군수는 “남은 3년간 낮은 자세로 군민 삶의 질 향상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변화와 도전에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했다. 부디 바라건대 “오동은 천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닌다(桐千年老恒藏曲)”는 옛말처럼 은은히 요란스럽지 않게 뜻을 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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